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탁경현 (문단 편집) == 생애 == [[1920년]], [[경상남도]] [[사천시|사천군]] [[서포면]] 외구리에서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070927/8493622/1|태어났다]]. [[1926년]]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리츠메이칸중학교와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취직했으나 일본의 병역법 개정으로 인해 [[1943년]] [[일본 제국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으로 입대한다. 이후, 만주등에서 1식전 히아부사 연승훈련후 카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가고시마현]]의 지란정에 있는 교육대에서 추가로 비행훈련을 받았다. 카미카제 출격 전날 밤에는 교육대 인근의 도미야 식당에서 고향의 땅 조선의 가요 [[아리랑]]을 불렀다. [[1945년]] [[5월 11일]], 탁경현은 예정대로 250kg의 폭탄을 싣은 1식전 전투기에 탑승하여 [[오키나와]]의 미군 주둔지를 향하여 출격하였고, 560km를 비행해 오키나와 해상에서 24살의 생을 마감했다. 사후 1984년에 미쓰야마 미노루가, 2008년에는 구로다 후쿠미가 사천에 귀향위령비를 세우려 했지만 모두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실패했다. 둘 모두 한일친선을 주제로 탁경현을 기리는 비문을 적었는데 미쓰야마 미노루의 위령비는 친일 논란으로 건립조차 못했고 구로다 후쿠미는 제막식 날짜까지 정해두었지만[* 당시 사천시에서 위령비를 세울 터와 경비 일부를 지원했다.] [[광복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당일 행사가 취소되고 귀향위령비는 철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