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림 (문단 편집) === 근현대 === [[파일:예멘 타림 2.jpg|width=700]] 1920년대의 타림.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성벽이 보인다 안정이 유지되던 타림은 1809년 1차 사우디 국가의 와하비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샤피이파 마저 이단이라 여긴 이크완 전사들에 의해 라바트에 소장되어 있던 저서들은 훼손되거나 우물에 던져졌다. 비록 3년 후 [[메흐메드 알리]] 파샤가 개입하며 해방되었지만 일대는 황폐해졌고, 많은 하드라미들은 인도의 [[하이데라바드]]로 이주하였다. 그중 현지 예멘계 용병대의 제마다르 직위에 올랐던 압둘라, 아와드 알 쿠아이티 형제가 1858년 귀국하여 쿠아이티 술탄국을 세웠다. 1881년까지 그들은 하드라마우트 대부분을 석권하였고, 카티리 술탄국은 세이윤과 타림 일대로 축소되었다. 한편 20세기 들어 타림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이주했다가 부를 쌓아 돌아온 알 카프 가문의 사이드 아부 바크르 빈 셰이크를 중심으로 근대화 요구가 일었다. 알 카프 가문은 타림과 쉬흐르를 잇는 도로를 개설하여 하드라마우트 내륙에 선진 문물을 들여오고자 하였다. 하지만 내륙과 해안 간 교통을 독점하던 낙타 대상들이 반발하여 근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사이드 아부 바크르는 영국의 첫 정치장교 해럴드 잉그람스와 함께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먼저 일대의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37년 2월, 한세기 가량 대립하던 쿠아이티 & 카티리 술탄국이 휴전을 체결하였다. (잉그람스의 평화) 이로써 안정이 찾아오자 근대적인 행정 및 교육 체제가 도입되는 등 일정 수준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1967년 영국은 아덴에서 철수하였고, 그 숙적이던 공산 계열 국가 해방 전선이 남예멘을 세웠다. 그에 소속되어 통일과 [[예멘 내전]]을 겪으면서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타림은 비록 외부 원조에 의지하는 취약한 경제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예멘 정부군 수중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