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퀸(밴드)/역사 (문단 편집) == 스마일 시절 == 1968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의 학생이였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베이시스트[* 사실 그는 그냥 보컬이었으나 드러머와 기타리스트, 보컬밖에 없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베이스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베이스를 잡지 않고, 보컬과 기타를 겸업한다.] 팀 스태플(Tim Staffel)[* 1948년생. 음악가로서는 이후 묻혀졌다. 결국, 1973년 25살에 음악을 그만두고 애니메이터, 컴퓨터 디자이너 등등 여러 직업으로 살아갔다.2001년에 거의 30년만에 음악가로서 돌아와 앨범 활동을 하며 현역이다.]이 밴드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드러머가 필요했던 그들은 학교 공지 게시판에 광고를 실었고, 그를 본 치과대학(London Hospital Medical College) 학생인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밴드에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밴드 이름을 스마일(Smile)이라 지었고,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 [[예스(밴드)|예스]]와 같은 밴드들의 콘서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보조 일을 했다니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여러 증언이나 평전에 나온 것에 따르면 쟁쟁한 뮤지션들의 보조를 맡을 만큼 실력이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아마 이 때는 오프닝 밴드로 활약했을지도?] 그러던 중 머큐리 레코드(Mercury Records) 관계자에게서 온 레코딩 계약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그들은 머큐리 레코드사가 제공해준 트라이던트 스튜디오(Trident Studio)에서 음반작업을 시작한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smile2.png|width=100%]] || || 스마일 시절의 그들. 왼쪽부터 로저 테일러, 브라이언 메이, 팀 스태플 || 1969년, 팀 스태플은 일링 칼리지(Ealing College)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를 밴드에 소개하는데, 그가 훗날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이다.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파로크(프레디)는 곧 스마일 밴드의 열성 팬이 되었고, 멤버들은 그를 '제 4의 멤버'격으로 대해줬다. 그러던 동년 8월, 머큐리 레코드는 스마일의 팀 스태플 작곡의 'Earth'와 브라이언 메이 작곡의 'Step On Me' 두 곡을 싱글 발매하기로 결정하는데, 문제는 머큐리 레코드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영국 쪽 유통망은 매우 허술했다는 것. 결국 싱글은 미국에서만 발매되었고 이마저도 판매량이 시원찮았다. 그럼에도 앨범 발매를 준비하던 그들이었으나, 스마일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팀 스태플이 스마일을 탈퇴하고 험피 봉(Humpy Bong)이라는 밴드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일어난다. 팀이 탈퇴하자 머큐리 레코드도 그들을 버렸다. 애초에 싱글 1장 계약이라 항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난항에 빠진 밴드는 새로운 보컬을 뽑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했다. 당시 프레디 머큐리는 로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스마일이 보컬 오디션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처음부터 스마일과 가까운 관계였던 자신에게 먼저 얘기해 주지 않은 것을 매우 섭섭해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프레디가 새 멤버로 들어왔고, 밴드 이름을 스마일에서 퀸으로 바꾸게 된다. 밴드 이름을 지을 때, 프레디는 '퀸(Queen, [[여왕]], 게이)'[* 당시 여왕을 뜻하는 Queen이 게이를 뜻하는 속된 은어로 쓰이기도 했다. 때문에 멤버들이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를, 브라이언은 '그랜드 댄스(Grand Dance, 위대한 춤)'를, 로저는 '리치 키즈(The Rich Kids, 부유한 아이들)'를 제안했다. 사실 프레디가 제안한 '퀸'이라는 이름은 여왕이라는 뜻 이외에도 앞서 서술했듯 동성애자라는 뜻이 있어 당시 기준으론 매우 파격적인 밴드명이라 브라이언과 로저는 처음에 프레디의 제안이 개그인줄 알고 웃었다고 한다. [*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퀸'은 단순히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자 역할을 하는 게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성 역할로 매력있는) 게이라는 뜻이다. 이성애자들의 세계에서 여러 남자들의 사랑을 받고 그 남자들을 거느리는 매력있는 여성을 빗대어 ‘[[여왕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여왕벌의 게이 버전을 영어로 '퀸'이라고 하는 것이다. 퀸이 데뷔 초에 ‘멤버 전체가 동성애자들’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결국 밴드의 이름은 퀸으로 결정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http://www.queenlive.ca/queen/misc/70-05-27_Roger_diary.jpg|로저 테일러의 1970년 5월 27일 일기.]] 프레디가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퀸이라고 이름 지은것은 굉장히 위엄있고 화려하며 시각적으로 잠재력이 커서 어떤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고 그 외에도 아주 많은 뜻을 품을 수 있어서 일찌감치 생각해 둔 것이라고 했다. 베이시스트 팀 스태플의 탈퇴로 베이스 자리가 비게 된 그들은 이후 3명의 베이시스트[* [[마이크 그로스]]( ~1970/7/25), [[베리 미첼]](1970/8/23 ~ 1971/1/9), [[더그 보기]](1971/2/19 ~ 1971/2/20)]를 거치는데, 모두 얼마 못 가 탈퇴하고, 1971년이나 되어서야 한 디스코 파티에서 브라이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우연히 알게 된 [[존 디콘]]이 들어오며[* 안정적인 베이스 실력, 얌전한 성격, 그리고 전자 기계를 다룰 줄 알아 가난한 밴드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점 등이 장점이었다.][* 참고로 존 디콘은 우연히 퀸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1970년 10월 16일 런던에서의 공연이었으며 당시 그는 19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공연에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했다고. 사실 공연(특히 프레디의 퍼포먼스) 자체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의 퀸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퀸 측에서는 존 디콘이 들어와 라인업이 완성된 이 때 (1971년)를 공식적인 결성연도로 치고, 10주년, 20주년 기념반인 [[Greatest Hits(퀸)|Greatest Hits]], [[Greatest Hits II]]도 각각 1981년, 1991년에 발매되었다. 팀 스태플은 이후 험피 봉 활동은 성공하지 못했고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근데 그게 또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음악 말고도 모형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취미를 살려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어린이 애니메이션 [[증기기관차 토마스]]의 모형 애니메이션 첫 시즌에 모형 기관차 및 각종 디오라마의 설계와 제작을 담당했다. 이 결성 멤버들의 출신 배경이 좀 재미있는데, 모두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한 고학력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더 후]], [[블랙 사바스]] 등 그 시절 록 뮤지션들은 대부분 대학교는 구경도 못해본건 물론이고 음악 교육도 받지 못해 기타도 독학으로 배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는 중졸이고 (물론 노년때 받은 명예박사학위들은 제외하고) [[링고 스타]]는 아예 초졸이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록밴드의 멤버들 역시 불우한 가정 환경 또는 음악적인 열정 때문에 대학교 진학을 포기해서 고학력자인 경우가 드문데, 그런만큼 퀸의 멤버들이 독특하게 보이는것.] 게다가 디자인 계열 출신인 프레디 머큐리를 제외하면 모두 이공계 분야이다.(로저 테일러-치과대학, 브라이언 메이-천체물리학, 존 디콘-전자공학) [[프레디 머큐리]]는 [[히스로 공항]]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좀 학력이 낮아보이는 면이 있지만, 프레디의 모교인 일링 미술 대학교는 당대 기준으로 꽤나 잘나가던 미술 대학교였다.[* 참고로 [[피트 타운젠드]], [[로니 우드]]와 동문이다.] [[로저 테일러]]는 얼굴도 락스타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유복했던 가정 환경, 뛰어난 공부 실력[* 교통사고 때문에 성적이 상당히 떨어지긴 했음에도 의대에 붙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유년기 그와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도 전부 옥스퍼드와 런던 대학교에 붙었다.] 등으로 도저히 락스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엄친아였다. [[브라이언 메이]]는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대학교중 하나인 임페리얼 칼리지의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던 초고학력자였다.[* 임페리얼 대학교는 과장 좀 보태면 MIT 뺨치는 엄청나게 빡센 공대로 유명하다. 거기다가 학비 역시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함께 억 소리 나올정도로 비싸다.] [[존 디콘]]의 경우 첼시 과학기술 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생이었는데, 현재 해당 대학은 [[킹스 칼리지 런던]]에 합병되어 동문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고, 우수성적에 해당하는 학위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여러 음악 평론가들에 의해 "잘난 명문 대학교 출신들이 배운 거 티내면서 잘난척한다"라면서 까였다.[* 반면 동시대에 활동했던 캐나다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러시(밴드)|러시]]는 "고졸 출신들이 못배웠는데도 잘난척한다"라며 비난을 받은 바 있다(...)--대체 어쩌라는거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