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르만 (문단 편집) === 셀주크 왕조 === ||[[파일:Kerman_Seljuk.png|width=580]]||[[파일:케르만 셀주크.png|width=270]]|| 부왕 차그리과 형 [[알프 아르슬란]]의 치세 동안 케르만을 다스린 카부르트는 1053년 오만을 점령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1072년, 조카 [[말리크 샤]]가 즉위하자 이듬해 그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튀르크 장수들 대부분은 카부르트를 지지했지만 말리크 샤의 유능한 재상 [[니잠 알 물크]]는 [[아르투크 왕조]] 등 비투르크 군대를 동원하여 그해 5월 16일, [[하마단]]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추격전 끝에 카부르트는 사로잡혔고 니잠의 주장대로 그와 반란에 가담한 그의 네 아들은 처형되었다. 다만 반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카부르트의 세 아들들은 사면되어 케르만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케르만 셀주크의 기원이 되었다. 카부르트의 장손인 이란 샤가 1101년 [[아사신]] (이스마일파 암살단)에게 살해되자 막내 케르만 샤의 후손들이 아미르 직위를 이어나갔다. 12세기 들어 셀주크 제국은 와해되었고 케르만 셀주크는 사실상 독립하였다. 비록 1154년 오만을 상실하긴 했지만 1159년 무함마드 2세 사후 붕괴해버린 셀주크 제국[* 완전히 멸망한건 1194년.]과 달리 실권을 유지하였다. 당시 케르만은 향신료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학문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아흐마드 산자르]]의 시대부터 호라산을 유린한 [[오우즈]] 부족은 호라즘 제국과 카라키타이의 압박에 밀려나 1179년부터 케르만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180년 대규모로 남하한 오우즈 족은 네르마쉬르에 정착하고 케르만 셀주크의 투란 샤 (케르만 샤의 증손)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는데 1184년 투란 샤가 암살되며 정국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1153년 산자르가 사망한 후로 [[호라산]]의 사라크를 장악한 오우즈 족장 말리크 디나르는 1179년, 호라즘[* 테키쉬에 저항한 동생 술탄 샤.]-카라키타이 연합군이 침공해 오자 [[니샤푸르]]를 장악한 토간 샤에게 의탁하였다. 토간 샤는 일시적으로 사라크를 수복하였으나 1181년 재차 상실하였고 오히려 [[투스]]까지 빼앗겼다. 1185년 토간 샤가 사망하고 아들 산자르 샤가 즉위하였는데, 그는 말리크 디나르를 축출하였다. 이에 말리크 디나르는 동족 오우즈 족이 이미 진출해 있던 케르만으로 향하였다. 여담으로 1187년 호라즘 제국은 결국 니샤푸르를 정복하였고 산자르 샤는 애꾸가 되었다. 당시 케르만 셀주크는 투란 샤의 암살 이후 그의 조카 무함마드 샤가 즉위한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