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태원 (문단 편집) == 경영 활동 == 1992년 SK상사에 부장으로 입사 후 상무를 거쳐 SK주식회사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SK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되었다. 1998년 8월 26일 [[최종현]] 선대회장 작고 당시, 경영권에 관하여 특별한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함에 따라 SK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당초 SK그룹의 경영권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최윤원 회장은 "우리 형제 가운데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1991147|#]][*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윤원도 채 2년도 되지 않아 폐암으로 요절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그해 9월 38세의 어린 나이에 SK그룹의 수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나서게 된다. 당시 외환위기로 기업 환경이 암울했던 시기에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최 회장은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라는 취임 일성과 함께 생존을 위해 그룹 체질을 바꿔야 함을 강조했다고 한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154745?sid=101|#]] 2002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그룹 CEO 세미나에서는 "생존 능력이 없는 계열사는 흑자라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제주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https://m.mk.co.kr/news/business/4209512|#]] 2005년까지 흑자를 내더라도 일정 수준의 이익을 못내는 계열사는 정리한다는 것으로 '계열사의 3대 생존 조건'으로 사업모델의 경쟁력 확보, 세계적 기업 수준의 운용 효율성, 경제적 부가가치(EVA·영업이익 중 세금과 자본비용을 뺀 금액)가 플러스가 될 것을 설정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1024/7875461/1|#]] 이후 SK 글로벌 사태, [[소버린]] 사태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으나 이를 극복하며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https://dbr.donga.com/article/view/7_1/article_no/1636|#]] 특히 2003년에 발생한 소버린 사태는 SK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로 꼽히는데, [[모나코]]에 기반을 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식회사의 주식 14%를 매입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사건이다. 당시 주주총회서 표 대결까지 간 결과 SK그룹이 [[팬택앤큐리텔]] 등 우호 세력, 외국인 주주, 소액주주의 도움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SK그룹과 최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소버린의 압박이 진행되는 동안 SK는 이사회의 70%를 사외이사로 구성,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선언하는 등 위기를 돌파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대폭 개선하며 주주들을 설득하는 한편,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면서 신뢰를 얻었다.[[https://www.sedaily.com/NewsView/1S3KPP4KUS|#]] 또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https://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8082202019922601015|#]] 어렵게 위기를 극복한 최 회장은 2008년 9월 최종현 선대회장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임직원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힘겨웠던 SK그룹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모두 전현직 임직원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https://dbr.donga.com/article/view/7_1/article_no/1636|#]]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의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400432&isYeonhapFlash=Y|#]]. 2014년 3월 4일에 모든 계열사 대표직 및 그룹 내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 뒤, 2015년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527명과 함께 특별사면 되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7789923|#]] 이후 SK 회장직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후 SK그룹의 실적은 크게 성장했다. 자산과 매출 규모 등에서 급성장을 이어가 '''국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고, 기존 주력 분야였던 에너지·정보통신에 이어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미래 신성장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질적 성장도 이뤘다는 평가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154745?sid=101|#]]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K그룹 25년 성과.jpg|width=100%]]}}} || || {{{#000,#000 '''최태원 회장 취임 후 25년간 SK그룹 성과'''}}} || 최 회장 취임 후 25년간 SK그룹 자산총액은 10배, 매출은 6배, 영업이익은 9배 성장했다고 한다. 특히 수출액은 83조4천억원으로 약 10배 성장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한국 전체 수출액 약 887조원 중 거의 10%를 SK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SK그룹 사업이 내수시장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통념과는 다른 사실이다] 최 회장이 SK를 이끄는 동안 가장 놀라운 사건은 단연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로,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만으로는 그룹 성장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사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내외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여 하이닉스 인수를 관철했다고 전해진다.[[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1707119622b|#]] SK가 2011년 11월 3조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에는 ‘승자의 저주’ 우려도 제기되었으나, 인수 후 적극적 기술·시설 투자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인수 첫 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타 업체들이 투자를 주저할 때 역발상으로 3조8500억 원을 투자했고, 2013년에는 R&D 비용을 1조 원 이상 투자했다. 이러한 투자가 밑거름이 되어 반도체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자 SK하이닉스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올렸다.[[https://weekly.donga.com/economy/3/04/11/1437991/1|#]] 그 결과 하이닉스는 SK 편입 이후 10년간 매출 약 4배, 영업이익은 약 34배 증가했다. SK는 덕분에 재계 2위로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수출 비중이 70%를 넘어서는 수출지향형 기업집단으로 탈바꿈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7830|#]]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0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으며 경영 복귀 후에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가치 구현을 독려하고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사업에 내재화해야 기업 가치를 높여 지속가능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경영지론 하에 그룹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에 2016년 사회적 가치 창출 조항을 명문화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154745?sid=101|#]] 최 회장은 여기에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두 축으로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측정틀을 만들어 계열사 경영에 직접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https://www.sedaily.com/NewsView/1S3KPP4KUS|#]] SK그룹 직원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판이 상당히 좋은데, 직원들을 대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추고 친절한 자세를 보여서라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을 닮았는데, 신약 개발로 유명한 김대기 박사가 [[SK케미칼]]에서 근무할 당시 최종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앞에서 신약 개발이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보고를 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김 박사의 발표를 묵묵히 듣고 있던 최종현 회장이 갑자기 "김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니오?"라고 묻자 주변이 술렁거리고 김 박사도 당황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한마디가 압권. "부작용을 진작에 발견해서 해결한다면 더 완벽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잖소? 앞으로 더 열심히 개발해보시오."] 2019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구성원의 행복에 두겠다고 발표한 후 실제 구성원들과의 다양한 소통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행복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복토크 100회를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9/2019121901134.html|채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