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촉한멸망전 (문단 편집) ==== 촉군의 퇴각과 종회의 포위망 ==== 제갈첨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강유가 이끄는 촉군은 검각을 버리고 남하하기 시작한다. 이 때 강유의 병력은 종회전에서는 4~5만, 화양국지에서는 10만이라 기록했다. 종회전에서의 병력 언급이 자신의 전공을 보고하기 위해 올린 공식 문서(표)로서 과장되기 쉽다는 점, 그리고 전쟁 직후 위나라에 제출된 촉의 호구 기록에서 10만 2천을 총병력으로 명시한 점을 고려하면, 화양국지의 10만 기록은 현실성이 없으며 4~5만이 현실적인 수치로 여겨진다. 검각에는 촉의 전 병력 중 절반이 집결해 있던 셈이 된다. 등애의 군대가 성도를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강유와 중앙 조정과의 연락은 단절되었다. 강유는 조정이 성도 수비, 오나라 도주, 남중 도주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뭘 고를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검각의 촉군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도 구원을 위해 퇴각을 시도하였고, 검각을 완전히 비웠다. 10만여에 달하는 종회군이 성도가 있는 평지로 나갈 길이 활짝 열린 순간이었다. 종회는 강유가 성도를 구원하는 모습을 구경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다른 지휘관을 희생시킬 정도의 야심가였지만 여전히 원정에 필요한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종회의 본대는 동서로 흩어진 군대를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검각과 성도의 중간에 놓인 부현을 완전히 장악했다. 참군 황보개와 왕매는 부현의 남부에서 병사를 징발했다. 사마 하후함과 호군 호열은 검각에서 성도로 향하는 길을 끊고 침군 원청, 장군 구안은 이를 지원했다.[* 위서 종회전] 강유는 4~5만의 병력이 한데 모여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종회의 방해를 무시하며 성도를 향한 행군을 느리게나마 이어나갔다. 종회는 남부의 오나라로 통하는 길과 북부의 탈출로를 모두 막았다. 촉의 마지막 병력이 희망없는 행군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경계심을 유지하며 군대를 집결시켜 포위망을 촘촘하게 조여나갔다.[* 위서 종회전] 잔존 촉군은 종회의 방해를 뚫어가며 성도 동쪽, 광한군 처현의 도로에 진입하였으나,[* 촉서 강유전] 성도와 광한군 처현 사이에 있는 대도와 신도는 이미 종회군에게 점거당한 상태였다.[* 위서 종회전] 광한군 처현의 도로에서 절망적인 행군을 이어가던 촉군에게, 유선이 항복해 성도가 점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는 유선의 칙령이 전달되었다. 강유는 창(과戈)를 던지고 갑옷을 벗어던진 채 부현에 주둔한 종회에게 나아가 항복하였다.[* 촉서 강유전] 휘하의 병사들은 칼로 돌을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