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서 (문단 편집) == 개요 == 晉書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위나라]]의 [[사마의]]의 시절부터 [[서진]]을 거쳐 [[동진]] [[사마덕문|공제]] 때 동진이 멸망할 때까지의 [[진(사마씨)|사마진]]의 역사 기록을 담은 역사서. [[24사]] 중의 하나다. [[당나라]] [[당태종|태종]]은 이전 시대 사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서들을 모아 하내 사마씨의 진나라에 대한 정사서를 새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따라서 646년 윤 3월 조서를 내려서서 조정 신료들로 하여금 새로운 《진서》를 편찬하게 하였다. 작업은 당시 재상인 방현령 등 3명이 감수하고 그 아래에 18명의 사관을 두어 분담해서 실행되었다. 방현령 등은 [[육조시대]] [[제(육조)|제나라]]의 학자 장영서(臧榮緖, 415~488)의 《진서》를 저본으로 하고 다른 역사서를 참고로 하여 편찬을 실행하였으며, 2년 후인 648년에 완성하였다.〈제기(帝紀)〉 10권, 〈지(志)〉 20권, 〈열전(列傳)〉 70권, 〈재기(載記)〉[* 여러 나라의 사정을 기록한 것. 《진서》에서는 [[오호십육국시대|오호십육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30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130권이다. 〈서례(敍例; 서문)〉, 〈목록〉이 한 권씩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고조선제기(高祖宣帝紀)〉, 〈세조무제기(世祖武帝紀)〉, 〈육기육운전(陸機陸雲傳)〉, 〈왕희지전(王羲之傳)〉은 [[당태종]]이 직접 편찬에 관여하였기에 '어찬'(御撰)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진나라에 대한 기록은 동진~남북조시대를 걸쳐서 여러 사람이 각각 저술한 18 가지의 《진서》, 《진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라졌고, 《태평어람》, 《세설신어》, 《정사 삼국지》 주석에, 다른 진나라에 대한 기록 몇몇만이 인용되어 남아있다. '''이로서 《진서》는 유일하게 온전히 현존하는 진나라의 기록에 대한 역사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