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한미군 (문단 편집) == 특성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주한미군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_2018.png|width=100%]]}}} || || 2018년 주한미군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 [[https://news.v.daum.net/v/20201121105514518|주한미군 지역별 관할 구역(AREA) 지도]] 2013년 미국 랜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사시 중국군은 3개 사단 규모의 [[공수부대]]를 곧바로 북한에 투입해 [[평양]]에 누구보다도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신속 기동부대의 경우 2시간 내에, 기갑사단의 경우 5∼6시간 내에 평양 진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선양군구|선양(瀋陽)군구]]가 [[백두산]] 중국 측 지역 등을 무대로 진행하는 군사 훈련은 외형상 내건 혹한기 기동력 강화와 달리 내부적으로는 북한 유사시 [[38선]]까지 중국군의 신속 전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북한]]과 [[중국]]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특성상 '''중국군이 북한에 주둔하여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북한과 달리 한국의 우방인 미국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목표는 미군 도착 전에 적화 통일 완수'''였다. 급작스런 남침에 아쉬운 대로 [[주일미군]]을 끌어다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시작했다. 인민군 ‘제105땅크여단’이 선봉을 이끌며 순식간에 한국군을 [[낙동강]]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단 1대의 전차도 없던 한국군은 총탄을 튕겨내는 탱크의 위용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한반도의 도로 상황이 말이 아니었던지라 전차를 사용한 전격적인 기동전은 구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민군은 전차를 이동식 요새처럼 사용하는, 한반도 지형에 완벽히 걸맞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내려왔다. 그리하여 한국군은 속절없이 뚫리며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전차를 처음 봤으니 전선을 지켜내기 어려웠다. 본토의 미군 도착 즈음에는 대한민국 전역이 거의 다 점령당한 상태였으며 [[배수진]]으로서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 전선을 구축해 공세를 막아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545792|'한국판 300' 다부동 전투]]''' 북한군에게 상대가 안 되던 오합지졸 한국군이 [[다부동 전투]]에서만큼은 영화 '300' 빙의하여 목숨걸고 용맹하게 절대사수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기나긴 [[태평양]]을 건너 드디어 미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당시 탈진 상태에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최후의 전선을 지키고 있던 한국군 용사들이 "지켜냈다"고 탄식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런 똥줄타는 상황을 겪었으니 아예 미군부대를 갖다박아놓은 것이며 그래서 [[인계철선]]으로 불린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549969?sid=100|핵보유국 외친 김정은 "낙동강 철수 恨 못잊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2020년 휴전 67주년 노병대회 연설에서 "우리는 남해를 지척에 둔 낙동강가에 전우들을 묻고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동지들의 한을 잊은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6·25 남침 한 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다가 한미의 '필사의 사수전'에 막혀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친 일이 통한의 눈물이자 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찔한 상황이었기에 전쟁 이후에는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상시 주둔시키게 되었다. 이는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왜냐하면 6.25 전쟁 자체가 김일성이 막무가내로 침공한 게 아니라 나름 견적을 내보고 충분히 미군 도착 전에 적화통일할 수 있다는 계산 하에, 미군과의 충돌 우려로 전쟁을 꺼리던 [[스탈린]]을 필사적으로 설득해 승인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남조선강점 미군'이라 칭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은 중앙위원회 선전국 명의의 성토문을 통해 "미군 남한 강점 73주년을 맞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투쟁에 모두 떨쳐 일어날 것"을 남한 인민들에게 호소했다. "미군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 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주한미군이 [[적화통일]]을 막고 있다는 의미다. 2019년 4월 [[2019년 고성-속초 산불|대규모의 산불재난 사태 때]] '''주한미군이 강원도 산불 진화에 [[헬기]] 및 장비를 지원'''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주한미군에는 전쟁을 상정한 최첨단 장비들이 있으므로 전쟁에 준하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시에도 각종 인명 구조나 복구 작업에 꽤나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실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주일미군]]도 구호 활동에 나섰으며,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 [[항공모함]]을 급파하여 각종 구호 물자들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전쟁뿐 아니라 각종 재난재해 시에도 군말없이 솔선수범 대민지원에 나서는 최우방국이자 세계의 [[경찰]]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만으로 [[억지력]]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사건에 대해 북한이 뻔뻔한 태도를 보여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서부전선 포격 사건]]을 벌이며 '''48시간 내에'''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여론은 북한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분개하여 계속 끌려다니면 안된다며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는데, 주한미군 미 제2보병사단 210야전포병여단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 주한미군의 [[M270 MLRS]](다연장로켓)과 [[FMTV]] 트럭이 최전방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포착되어 '''[[https://www.yna.co.kr/view/PYH20150823042800013|통일대교 통과하는 미군]]'''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무력도발만 하려했으나 피해를 입지않은 미국이 판문점 도끼사건 때처럼 미군을 최전방에 배치하자 빨리 대화 안하면 꼭지 돈 남한군과 동맹인 미군이 북진하여 진짜 정권이 무너질 상황까지 왔다고 느낀 북한이 한국에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으며, 지뢰도발사건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하며 마무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