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용수 (문단 편집) == 여담 == 조용수의 1심 판결 당시 배석판사 중 1인이 과거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이었다. 97년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쪽에서 이회창 아들의 병역기피의혹을 제기한 것에 발 맞추어 [[자유민주연합]]이 이 사실을 공격했지만, 묻혀버렸다.(...) 유머인 것은 자유민주연합이 [[5.16 군사정변]]의 주역인 [[김종필]]이 총재로 있는 당이었다는 데 있다. 한편 TV 정견 발표회에서 시민운동을 대표해서 패널로 참여했던 [[박원순]] 변호사[* [[서울시장]]에서 자살을 한 그 사람 맞다. 당시 [[참여연대]] 대표.]도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는데, 이회창 후보는 "당시 서울지법 판사 중에서 연소자 순으로 뽑혀 혁명재판부에 말석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라고 직접 해명하였다. 즉 5.16군사정변 직후의 군정시기라서 자기는 어쩔수 없이 배석했을 뿐,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한참 이전에 조용수 평전을 쓴 경향신문 원희복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35년여 판사 생활 중 가장 생각나고 아쉬운 재판"이라면서 완곡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http://wonheebok.khan.kr/273|정치사건 판사의 고뇌-이회창]] 대륜중학교 재학 시절 [[김재규]]의 제자였다.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분류:1930년 출생]][[분류:1961년 사망]][[분류:교수형된 인물]][[분류:사법살인]][[분류:함안 조씨]][[분류:진주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출신]][[분류:메이지대학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