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후 (문단 편집) === [[한나라]] === 그러나 [[진시황]]의 가혹한 통치와 [[이세황제]] 호해가 저지른 여러 실정으로 각지에서 일어난 [[초한쟁패기]]의 반란으로 진나라가 멸망하고, [[항우]]가 [[항우의 18제후왕 분봉|18개의 왕국을 분봉]]하면서 다시 [[봉건제]]로 회귀하여 제후가 부활하...는 듯하였으나, 항우가 패망하고 [[한고제|유방]]에 의하여 [[전한|한나라]]가 세워지면서 [[군현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가 실시되었다. 이때는 다시 실권을 가진 제후[* 초기에는 [[한신(한왕)]] 등 공신을 제후인 [[왕]]으로 임명하였으나 이후 [[이성왕|이성제후왕]]들을 [[토사구팽]]으로 [[숙청]]하고 황족인 유씨인 [[동성제후]]만 왕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 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왕작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후백자남]]은 유씨가 아니라도 가능했기에 유씨가 아니면 제후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가 임명되었으나, [[오초칠국의 난]]으로 인하여 군국제가 폐지되면서 다시 군현제가 전면적으로 자리잡고, 제후는 실권이 없는 명예직의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황족을 왕이나 공으로 봉하고, 공신들을 후로 봉하여 [[식읍]]을 주는 제후 제도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