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1SS의용기갑척탄병사단 (문단 편집) == 평가 == 제11SS의용기갑척탄병사단 '노르트란트'는 정예 사단의 하나로, 스칸디나비아 의용병은 '''최후의 1명까지''' 히틀러를 위해 [[베를린 전투|베를린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때문에 주요 SS사단인 [[제1SS기갑사단|라이프슈탄다르테 아돌프 히틀러]], [[제2SS기갑사단|다스 라이히]], [[제3SS기갑사단|토텐코프]], 비킹, [[제6SS산악사단|노르트]] 등과 함께 최강의 SS사단으로 부른 전사연구가도 있다.[* 제4SS경찰기갑척탄병사단은 [[프랑스 침공]] 당시에 조직되었지만 예외로 매우 약한 전투력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이는 [[하인리히 힘러]]가 국방군과 맺었던 1/10 협약의 맹점을 이용하기 위해 휘하의 질서경찰들을 급히 편성하였으며, 그나마 베테랑들이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소련군]]의 동계 공세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기사십자장 수령자가 31명에 이르고, 후기에는 전차연대까지 보유하였다.''' 하지만 유난히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제10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와 전쟁 말기의 발악에 가까운 [[제12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의 틈에 끼여 있고, 활약한 기간이 전쟁말기로 방어전의 성격이 짙어 제6SS산악사단 노르트와 함께 지명도가 낮은 취급을 받은 정예사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부대 장병 중에는 [[핀란드]] 출신도 있는데, 이들은 도중에 핀란드로 귀국하여 [[핀란드군]]에서 계속 복무하였다. 하지만 소수의 신원 미상의 핀란드계 병사들이 계속 SS사단에 남아 있다가 [[베를린 전투]] 때 전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