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상용 (문단 편집) == 생애 == [[1950년]] [[1월 5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학부 및 대학원|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교련반대시위를 주도한 뒤 중퇴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투쟁위원회 부위원장 겸 외무위원장으로 참여'''해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했다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4년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회장]], 1987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사회운동 서울특별시 공동[[의장]], 5.18 광주민중항쟁 동지회장 등을 지냈다. [[5공 청문회]] 진상규명 당시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부인하자 격하게 분노하면서 '''"사람 죽여놓고 자위권 발동이 뭐야!"'''라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1988년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서구 갑(광주)|광주광역시 서구 갑]] 지구당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그해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이영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광주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신한국당]] [[김덕룡]]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시 그가 국회의원 3선이 보장된 광주시 서구를 떠나 서초구에서 출마한 이유는 수도권에서 김대중과 국민회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알려져있다. 호남 중진 정치인이 강남에 도전장을 던지는 시초라고 볼 수 있으나 결과는 아쉽게도(...)[* 15대 총선이 1여 다야 구도로 진행되면서 야권 표가 국민회의와 민주당으로 분산된 탓이 가장 컸고 동시에 여권 후보였던 김덕룡도 같은 호남 출신이었다. 이 시기 지역구 의석 조정에 따라 광주 서구 지역구는 15~17대에 [[정동채]] 의원의 지역구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문화진흥 [[사장]]을 지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인 뉴서울골프장 사장에 재직했다. > "낙선하고 나니까 현역시절에는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국민의 눈높이에 내 눈을 맞추는 방법을 터득했다" >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복당 당시 인터뷰 중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51828|#]]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는 당시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을 위한 신당 창당 추진위'([[국민통합21]] 창준위)에서 대외협력위원장, 창당 후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정몽준 후보의 막판 지지철회로 국민통합21이 와해된 이후인 2003년 11월, [[김민석(정치인)|김민석]], [[이치호]] 전 의원 등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당규상 탈당 후 만 1년을 채우면 당무위원회 심의 없이 자유 복당이 가능했다.]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로 재기를 계획했으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출마 조차 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사실 광주광역시 서구 지역구는 15~16대에서 잠시 단일지역구였는데, 17대 때 분구 후에 그 유명한 [[새누리당]]의 [[이정현(정치인)|이정현]] 후보와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오병윤]] 후보 매치가 성사된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호주]] 호라이즌 골프장 사장을 지냈다. 골프장은 이후 부도가 났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문화국가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전남 함평 출신 동향에 전남대 출신 동문인 민주당 [[이용섭]]의 선거대책 위원장이었다. 이용섭이 광주광역시장에 당선된 이후 보은인사로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후보가 되었으나 광주광역시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심각하고 총체적인 자질 논란으로 자진사퇴하였다. 호주에 있는 아들은 만 18세가 되자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정상용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 518 유공자 자녀는 학비가 감면된다]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어려운 가정 형편[* 본인 입으로 난민 수준이었다고 말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는데 호주에서 대출 과정에서 상당한 담보물이 제공된 데 대하여서는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광주광역시 공기업의 수장이 되려는 사람이 지난 20여년간 주소를 서울로 하고 있었던데 대하여서는 둘째 딸과 셋째 딸 가족에 대하여 518 유공자 의료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과거 미국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거액을 탕진했고 그 돈을 갚지 않아 미국 입국이 안된다는 소문이 있다. [* 본인은 예당음향 변두섭 사장에게 5000달러를 용돈(!) 으로 받아 1300달러를 잃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하여 이용섭 광주시장이 과거 공천과정에서 민주당 공천에 어려움을 겪은 이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시장 후보로 공천 받기 위해 온갖 민주당 실세들에게 신세를 진 후 필연적으로 발생한 오기인사, 보은인사, 측근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후 이용섭 시장은 정상용을 남도학숙 원장에 임명했다. [* 이 정도면 오기 인사가 아니라 거의 약점이라도 잡힌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에서 문화국가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 무명 시절 [[이성재]]가 단역으로 연기했다. 이 때 같은 장면에 학생수습위원회 회장 김창길 역으로 출연한 사람은 무려 성우 [[강수진(KBS 성우)|강수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