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시 (문단 편집) == [[전주시/역사|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전주시/역사)] [include(틀:조선의 계국백)] [[파일:전주시 시기(1974-2001).svg|width=200]]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한 깃발 한때 전주에 속했던 지역 중 일부는 완주군의 소속으로 되어 있다. [[신라]] 때 [[9주 5소경]] 중 하나인 전주의 중심도시인 주치(州治)였다. 일찍이 [[후백제]]가 [[수도(행정구역)|수도]]로 삼았던 곳이었으며, [[고려]] 치세 전반 동안 전주는 [[전라도]]의 중심 도시였고,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주의 별칭이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 호남의 으뜸 도시).[* 풍남문에 이 명칭이 붙어 있다. 또한 [[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전주 시내로 진입할 때 등장하는 관문인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도 바로 이 '호남제일성'이라는 별칭에서 따온 이름이다.] 애초에 전라도의 '전'이 바로 전주(全州)이다. 조선의 왕성(王姓)이 바로 [[전주 이씨]]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전주 이씨이고, 북한 [[김일성]]도 '[[전주 김씨]]'다. [[조선]] 왕조 발상지라 '풍패지향(豊沛之鄕)'[* 풍패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으로, 왕조의 발상지를 뜻한다. [[중앙동(전주)|중앙동]]에 있는 전주 객사의 현판에는 큼지막하게 '풍패지관'이라고 써 있다.]으로 불렸는데,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전주 이씨]])이기 때문. 그래서 전주는 사대문에 풍(豊)자와 패(沛)자가 들어간다. 이성계의 실제 고향은 [[함경도]] [[함흥]] 근처 [[영흥]]이지만 조선 왕조는 왕조의 발상지를 전라도 전주로 한다. 조경단(肇慶壇)이 있는 건지산(乾止山)은 조선 왕실의 지중한 영내(領內)로써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잎도 함부로 못 다루던 금역지대이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풍패(豊沛)에 들러 승리를 기념하며 고향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듯, 이성계는 왜구를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주(全州)에 들러 황산대첩의 대승을 기념하며 전주 이씨 종친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으며 드디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포부를 드러낸다.[* 다만 아무리 구국의 영웅일지라도 고려 왕조를 엎어버리겠다는 역성혁명 즉 무력으로 '방벌(放伐)'의 뜻을 드러내며 제왕(帝王)의 기상을 노래한 시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왕조 교체는 평화로운 '선양(禪讓)'의 형식을 취했으므로 조선왕조실록 등 초기 기록인 정사에선 찾아볼 수 없고, 전주부사에 수록되어 있다. 후대에 이곳에는 고종 황제가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친필 비각을 세워 이를 기념하였다. 이성계의 '대풍가(大風歌)'를 듣고서 역성혁명의 뜻을 알게 된 정몽주가 전주 만경대에서 스러져가는 고려 왕조에 대한 심정을 읊은 '등전주망송대(等全州望宋臺)' 즉 '석벽제영(石壁題詠)'은 만경대에 암각되어 있고, 정몽주의 문집 '포은집'에 실려 있다.] > '''大國昭王跡''' 큰 나라 왕의 자취 환히 빛나고 > '''名城壯客眸''' 이름난 성의 장엄함에 찾아온 길손 눈이 휘둥그레지니 > '''洵哉豊沛號''' 풍패의 그 이름이여! > '''輝赫二門頭''' 드높은 두 개의 문이 휘황찬란하구나 > ---- > 다산 정약용이 전주를 유람하며 전주군으로 불렸던 [[완주군]]은 북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예전에 전주-완주 통합 투표를 할 때 고산면 일대는 전주와의 통합을 반대한 반면, 원래 전주에 속했던 읍면에서는 [[봉동읍]] 등 일부 읍면을 제외하면 전주와의 통합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과적으로는 통합하지 못했지만.] 전주에 속했으나 1935년 조선총독부령에 의거해 대전, 광주와 함께 동시에 전주군 전주읍에서 전주부로 분리 승격되었고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전주부는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부 승격 당시 [[대전광역시|대전]]과 [[광주광역시|광주]]도 함께 부로 승격되었다는 점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전주가 대전, 광주와 비슷한 규모와 위상을 지닌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60~1970년대부터 경부축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뒤늦게 시작된 균형발전 계획도 광주전남 위주로 진행된 탓에 전북 전체가 그냥저냥한 수준으로 전락했고, 전주도 마찬가지로 오늘날 [[광역시]]로까지 승격한 대전, 광주에 비해 여전히 일반시로 남아 있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일각에서는 비수도권에 [[일반구]]를 두고 있는 대도시들이 전주를 제외하고는 [[창원시]], [[청주시]], [[천안시]], [[포항시]]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선방했다고[* 조선시대까지 호남 제2의 도시로 전주와 함께 전라도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지만 지금은 인구 11만에 불과한 [[나주시]](현재는 인구 150만인 [[광주광역시|광주]]가 전남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를 고려하면 더욱.] 하지만 지역권 내에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가 있는 창원, 포항, 천안, 청주와 다르게[* 창원은 [[부산울산권]], 청주는 [[대전권]]에 속하지만 권역 내에서 독자성이 큰 지역들이고 천안, 포항은 넓은 범위에서 각각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대구권]]으로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이들도 독자적인 도시권을 갖추고 있다.] 광역시가 아닌 일반시로 머무르고 있는 데다가 유독 관광업의 비중이 높고, 인구 순위로도 20위권에 불과한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쇠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김제시]], [[정읍시]], [[남원시]] 등 인근 도시들은 전부 해방 이후 인구가 감소하는 동안 홀로 인구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