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제스 (문단 편집) == 설명 == 장제스는 [[청나라]]의 멸망, [[위안스카이]]의 왕조 복권 시도, [[중화민국/군벌|군벌]] 때문에 갈라진 중국을 스승인 [[쑨원]]의 사상을 계승하고[* 쑨원과 장제스의 사상은 생각보다 꽤 차이가 난다. 어찌보면 정반대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 [[국민혁명|북벌]]을 감행하여 마지막 군벌인 [[봉천군벌]]의 [[동북역치|항복을 받아]] 1920년대 후반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한 인물이다.[* 영국령이던 [[홍콩]], 일본령이던 [[다롄]] 지역은 되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포르투갈에 아예 줘버렸던 [[마카오]]도 있고. 게다가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행사하던 [[티베트]]도 있었고. 거기에 이 당시 중화민국은 [[몽골]]도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1920년대 [[담딘 수흐바타르]]가 몽골을 독립시킨 이후도 계속 몽골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수난사의 연속이기도 했는데, 분열된 근대 중국을 겨우 통일했나 싶은 찰나 얼마 안 가 쳐들어온 [[일본 제국]]을 방어해야 했고[* 일본군에 밀리기만 한 인상도 있으나, 실제론 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 육군 전력의 대부분을 대륙에 묶어두고 일본에게 엄청난 인적, 물적 출혈을 입혔다. 물론 이는 그가 이끈 [[국민혁명군]]은 [[나치 독일]]에서 파견된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에게 훈련된 정예병을 제외하면 [[항일대도|냉병기]]나 사용할 정도로 형편없었고, 애초에 일본군 규모와 보급 역량 자체가 그 넓은 중국 땅을 모두 먹기엔 국가 역량 자체에 무리가 있기도 했다.], 기어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국 [[연합국]]의 일원으로 여러 지위를 받아 유엔의 설립과 동시에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와 함께 향후 국제 세계를 이끌어갈 '''5대 [[강대국]]'''으로 인정받으며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얻었더니[* 이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는 대륙 본토를 잃고 [[타이완섬]]으로 나앉았을 때도 20여년간 유지됐으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에 사실상 강제로 뺏기게 된다. 이때 중화민국은 항의의 의미에 더해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떠밀려 유엔에서 탈퇴한다.], [[국공내전]]에서의 패배로 인해 결국 [[중국 대륙]]의 판세를 [[중국 공산당]]에 빼앗기고 [[타이완섬]]으로 쫓겨나는 [[국부천대]]의 치욕을 당하고 만다. [[국부천대]] 이후 대만으로 쫒겨났을 당시에도 죽을 때까지 대륙 회복을 포기하지 않고 대만의 경제, 사회 시설을 발전시켜 본토에서의 행적뿐만 아니라 현대 대만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나, 한편으론 대만이라도 사수하겠다는 아집 혹은 두려움 아래 수십 년 계엄령을 때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등 [[독재자]]로 군림해 오늘날 대만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국민당]] 계열에선 [[중정기념당]]에서도 보이듯 [[쑨원]] 바로 다음가는 주요 인물로 여기며 영웅시하지만, [[민주진보당]] 같은 민주화 진영에선 민중을 탄압한 독재자로 취급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극단적인 [[타이완 독립운동|대만 독립]]주의자들의 경우 아예 외국(= 중국)에서 온 [[침략자]]로 보기도 한다. 실제 그가 이룬 통일은 전대의 대표적 통일 군주들인 [[시황제]], [[한고제|유방]], [[조광윤]], [[주원장]]에 미치지 못한, 군벌들이 세를 유지한 채로 중화민국의 일원이 되는 일종의 [[연맹왕국]] 성격인 외형적 통일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의 갈등조차 제어하지 못해 [[반장전쟁]]이 일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내전은 결국 진압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지속된 외형상 통일의 한계는 곯아 터져 [[시안 사건]]으로 드러나고 만다. 중화민국 몰락의 원인은 군벌과 장제스의 갈등 외에도, 낙후된 사회 시설, 그리고 공산당 토벌과 항일 운동 중 의견 차로 내부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안 사건]]을 일으킨 [[장쉐량]]은 순수한 항일 목적이 아닌, [[만주사변]]으로 만주를 빼앗겨 영향력을 상실해가자 궁지에 몰려 장제스를 감금한 것에 가깝다. 이후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본토를 공격]]했고 [[난징 대학살]] 같은 비극을 견뎌내며 8년간의 항쟁 끝에 중국을 겨우 지켜냈으나 부정부패 등 내부 단속 실패로 인한 민심, 군심 이반과 [[시안 사건]]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중국공산당]]을 비롯한 [[마오쩌둥]] 세력에게 [[중국 대륙]]을 빼앗기고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타이완섬만 통치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최악의 상황에도 장제스는 [[국광 작전|본토 수복을 목표로 삼는 열정]]을 보여주었지만 그에 반발한 대만 국민들이 시위에 나서자 군대를 동원하여 [[2.28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