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매덮밥 (문단 편집) === 현실 === * [[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3150116?po=0&sk=title&sv=%EC%B9%9C%EC%96%B8%EB%8B%88&groupCd=&pt=0|친언니의 남친이 글쓴이의 전 남친.]] 사실 이 경우는 덮밥이라기보다는 [[구멍동서|기둥동서]]다. * [[야곱]]: 성경 중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라헬(창세기)|라헬]]을 좋아해 아내로 맞을 생각이었으나, 외삼촌의 통수로 라헬의 언니 레아까지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야곱이 라헬에게 반해서 결혼시켜 달라고 하니 "[[봄·봄|7년간 노력봉사하면 주겠다]]"고 해놓고 결혼식날 밤에 야곱을 [[만취|꽐라로 만든]] 다음에 신방에 레아를 집어넣는다. 아침에 야곱이 빡쳐서 항의하자 "동생 먼저 시집보내는 건 우리 지방의 전통에는 없는 거라 그래서 그런 거고, 다시 7년간 노력봉사하는 조건으로 라헬도 주겠다"고 하는데, 이 말에 야곱은 동의하고 라헬도 아내로 맞는다. 그리고 7년을 다시 진짜 그대로 [[열정페이|애정페이]].] * [[롯]]: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조카]]이고, 적지 않은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의 신자들에게 [[소돔#s-1.1]]과 [[고모라#s-1]] 이야기로 유명한 [[성경]] [[창세기]]의 인물 [[롯]]의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의 재산인 가축들이 많아 갈라지게 되어 땅이 좋아 보이는 소돔 유역으로 이전한 뒤 [[소돔#s-1.1]]과 [[고모라#s-1]]가 [[하느님]]/[[하나님]][* [[하느님]]과 [[하나님]] 둘 다 표기한 이유는 한국 토속신앙의 하느님이 아닌 성서에 기원한 [[야훼]]이기 때문에, [[유대교]]를 비롯한 [[가톨릭]]·[[성공회]]·[[정교회]] 등이 사용하는 하느님과 [[개신교]]가 사용하는 하나님을 동시표기하려 함이기 때문이다.]이 보기에 악을 행하여 멸망하게 되어 [[롯]]이 천사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도망한 뒤 어머니와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들을 잃은 [[롯]]의 두 딸이 대를 잇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취하게 한 후, 각각 첫날 밤과 둘째 날 밤에 [[근친상간]]을 하게 된다.[* 실제 [[창세기]] 19장 30~38절의 구절 가운데 있는 사건이며 딸들이 이렇게 말하며, 아버지인 [[롯]]의 뜻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롯]]은 의지가 아닌 강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간당할 만큼 술 취하는 건 아무리 상황이라지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것을 알리러 온, 사람으로 변장한 천사들을 지켜주려고 동네 사람들에게 차라리 '''[[처녀|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자신의 두 딸을 겁탈하라''' 했으니 말 다했다.--다만 동네사람들이 온 이유 자체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롯이 술로 인해 [[강간]]을 당하긴 했지만, 두 딸과 [[근친상간]]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두 딸 또한 롯의 딸들이니 위 개요에서 언급했듯이 "한 남자가 언니와 여동생, 둘 모두와 각각 따로 또는 셋이서 [[성관계]]하는 행위를 말한다"라는 내용에 근거해 자매덮밥에도 부합하는 내용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롯]] 항목이나 [[소돔#s-1.1]]과 [[고모라#s-1]]의 항목에서 보기를 원한다.] 여담으로 이 뒤에 나타나는 자손이 후에 [[야곱]] 즉 [[이스라엘]]의 후손과 대적하는 [[모압]]과 [[암몬]] 자손의 선조가 된다. * [[요(삼황오제)|요]][[순(삼황오제)|순]] 중 순임금이 요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 [[슈도다나]](정반왕, 백반왕): [[석가모니]]의 아버지. 자신의 아내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고 죽자 [[처제]](마야의 동생)인 마하파자바티와 재혼했다. 고로 석가모니는 [[이모]]가 의붓어머니이기도 하다.[* 마하파자바티는 조카를 친아들처럼 잘 키워준 듯하다. 마하파자바티가 석가모니에게 [[비구니|여성의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여기에 동조하자 꽤나 보수적이었던 [[마하가섭]] 존자가 석가모니 사후 [[제1차 결집]]에서 이 문제를 따진 일이 있었다. 이때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마하파자바티님은 부처님의 이모이자 의붓어머니로서 '''[[부처님]]을 길러주신 은혜가 매우 깊었기에''' 도저히 출가를 불허할 수가 없었습니다."] * 제잉제: [[춘추시대]] 이래의 고대 중국에서 상류층 남자가 혼인할 때 부인이 될 여자의 자매나 조카딸을 같이 아내로 맞이하는 관습. 이 관습은 꽤 오랫동안 있었는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손견]]이 두 자매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도 하나의 예이다. *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초성왕|성왕]]: 초나라에 붙은 [[정나라]]를 공격하던 [[송양공|송나라 양공]]을 홍수에서 쳐부수고[* [[송양지인]]으로 유명한 그 이야기이다. 초군이 도하해도 비겁하게 공격할 수 없다고 하다가 결국 도하해 온 초군에게 개발리고 상처를 입어 결국 죽은 어리석은 송양공의 이야기로 이것이 홍수 전투이다.] 정문공의 감사 연회를 받고 고국으로 개선할 때 정문공의 딸들인 백미와 숙미 두 자매를 얻어 동시에 동침했다. 문제는 백미, 숙미의 어머니인 문미는 초성왕과 남매 관계로 성왕은 조카딸 2명을 동시에 품은 것이다. 이 때 정나라의 대부 숙첨은 '왕(성왕)은 예를 몰라서 일생을 곱게 못 마칠 것이다. 향연의 예를 받고 마지막에는 남녀를 분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그가 패업을 못 이룸은 자명한 일이니라!'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성왕은 재위 기간 사이 [[패자]](覇子)를 못했고, 끝내 말년에는 후계자 분쟁 때문에 아들인 [[초목왕|태자 상신]]에게 몰려 자살한다. * [[경제(전한)|한경제]]: 왕지([[효경황후 왕씨]])와 왕신(王信) 자매를 황후와 후궁으로 삼았다. 왕지는 [[한무제]]를 낳았다. * [[성제(전한)|전한 성제]]: 절세[[미녀]]로 이름 높은 [[조비연]]을 후궁으로 맞은 뒤 그녀의 추천으로 그녀의 동생 조합덕도 후궁으로 봉했다. 조비연과 조합덕은 매우 우애가 깊어서 모든 일에 있어 함께 모의했고, 결국 성제의 총애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성제의 죽음과 함께 나란히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후한]] [[헌제]]: [[조조]]의 세 딸들인 [[헌목황후]] [[조절#s-2]], 귀인 [[조헌#s-3]], 귀인 [[조화#s-2]]를 차례차례 맞아들였다. * [[조위]] 문제 [[조비]]: 헌제의 장녀, 차녀를 한꺼번에 후비로 맞아들였다. 헌제의 세 부인들이 조비의 친동생들인데 결론적으로 조비는 [[조카]]딸을 얻은 셈이니 문제다. 다만 조비가 얻은 헌제의 두 딸들의 어머니가 조조의 딸들인지는 기록이 없어 모른다. 사실 아니라고 해도 촌수로 [[조카]]인 건 변함없다. * [[촉한]] 효회제(후주) [[유선(삼국지)|유선]]: [[장비]]의 장녀인 [[경애황후]]와 혼인했다가 그녀가 병사하자 차녀인 동생 [[장황후]]를 황후로 책봉하였다. 자매와 동시에 혼인한게 아니라서 엄밀히 말하면 '덮밥'은 아니다. * [[전조]] [[유총]]: 순임금의 예를 본따 자매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이 인간은 나중에 [[첩]]이 아니라 [[황후]]를 8명까지 뒀다. 그 황후 8명이 모녀, 자매였으니 문제였다. * [[모용희]]([[후연]] 소문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릉양왕의 [[선배]]격 인물. [[형수]]와 [[간통]], 자매덮밥, [[네크로필리아]] 쓰리런 달성. * [[고종(당)|당 고종]]: [[측천무후]]와 그 언니 한국부인 무씨를 취하고, 한국부인의 딸 진국부인 하란씨도 [[후궁]]으로 들였다. 자매덮밥+[[모녀덮밥]]. *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클로타르 1세]]: 2대 왕으로 [[호색한]]이었던 그는 형들이 죽을 때마다 [[형사취수제|형수들을 아내로 만들던 데다가]] 첩까지 두었다. 그런데 그 첩이 자기 동생의 남편감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당신의 동생을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하며 동생까지 첩으로 삼았다. * [[김균정]]: 선강태자의 두 딸([[정교부인]], [[조명부인]])과 결혼. * [[경문왕]]: [[헌안왕]]의 두 딸([[영화부인]], [[차비 김씨]])과 결혼. * [[김춘추]]: [[김유신]]의 두 동생([[보희]], [[문희]])와 결혼. 《화랑세기》 * [[남당]] 후주 [[이욱]]: 황후인 언니 주아황이 병들자 병간호를 하러 궁에 들어온 [[처제]] 주여영과 눈이 맞아, 주아황이 병사한다음 황후로 들였다. 나중에 [[북송]]에 항복하고 [[카이펑시|개봉]]으로 끌려간 다음, 주여영이 [[태종(송)|송태종]] 조광의의 궁으로 불러들여 [[겁탈]]을 당했다 한다. * [[해릉양왕]]: [[금나라]] 4대 황제로 자신의 처제를 [[강간]]하고 [[네토라레|신하의 아내와 그 여동생을 빼앗았다.]]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이쪽은 '''자매덮밥이 문제가 아니다.''' * [[선종(금)|금선종]]: 인경황후 왕씨와 왕원비가 자매지간이었다. 그 중 왕원비는 선종의 뒤를 잇는 [[금애종]]을 낳아 후에 명혜황후로 추존받았다. 인경황후가 동생이었고 왕원비가 언니였으며 왕원비가 애종 때 죽고 인경황후가 태후로 애종을 섭정했다. 그러나 [[원나라]]가 침입해 수도 [[연경]]을 함락하자 왕태후는 포로로 몽골고원으로 끌려갔고 평생 노예처럼 살았으며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숭덕제]]: 청나라의 제2대 황제로 [[효단문황후]]의 조카 [[효장문황후]]를 먼저 들이고 그녀의 언니 [[민혜공화원비]]를 후에 들였는데, 그의 총애를 많이 받은 것은 민혜공화원비 [[해란주]]였다. * [[강희제]]: 55명의 비빈들 중 친자매인 경우가 4쌍이나 있었다! [[효성인황후]]와 그 자매, [[효소인황후]]와 그 자매 온희귀비, [[효의인황후]]와 그 자매 각혜황귀비, 의비 곽락라씨와 그 자매가 주인공;; * [[광서제]]: 서태후에 의해 우물에 빠뜨려져 죽은 걸로 유명한 진비 타타라씨와 근비 타타라씨는 자매였다. 근비 쪽이 언니. * [[고려시대]] 중기까지는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경우 말고도 [[근친혼]]이 상당히 많았다. 후기에 들어 자제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유교]]가 들어오면서 사라지기 시작했으나, 워낙 오래인 풍습이라 [[조선]] 초기까지도 상당히 많은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유교가 자리를 잡자 사라졌다.[* 사실 종교 윤리 때문만은 아니고 폐쇄적인 귀족 체제가 과거로 진입 가능한 양반 체제로 변하면서 다른 가문과의 통혼이 자유로워지며 굳이 근친혼이나 자매 중혼으로 혈족을 특정 가문에 묶어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 고려 태조 [[왕건]]: [[왕규]]의 두 딸인 (소)광주원부인을 후궁으로 맞았다. 왕규의 또 다른 딸인 후광주원부인은 아들인 [[혜종(고려)|혜종]]의 후궁이 되었다. 또한 김행파의 두 딸인 대서원부인과 소서원부인과도 혼인을 하였다. * 고려 [[정종(고려)|정종]]: [[박영규]]의 두 딸 [[문성왕후]]와 [[문공왕후]]를 비로 맞이했다. 그런데 그 둘의 언니인 동산원부인은 아버지인 왕건의 후궁이고 그 세 자매는 [[견훤]]의 외손녀들이기도 하다. * 고려 [[경종(고려)|경종]]: [[헌정왕후]], [[헌애왕후]] 자매와 결혼. 언니는 헌정왕후이다. 이 자매는 경종의 숙부인 [[대종(고려)|대종]]의 딸이기에 사촌이기도 하다. * 고려 [[현종(고려)|현종]], [[문종(고려)|문종]]: 세 자매를 왕비로 맞이했다.[* 현종의 경우 성종의 딸들인 원정왕후, 원화왕후와 혼인한 바 있고, 거란의 2차침입 당시에 사실상 유일하게 신하의 예로 자신을 대해준 공주 절도사 김은부의 세 딸들과 혼인하였는데 김은부의 조카들이 이자상과 이자연이다. 훗날 이자연 역시 세 딸을 문종에게 시집보낸다.] * 고려 [[인종(고려)|인종]]: [[이모]] 둘과 혼인.[* 외할아버지인 [[이자겸]]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모순이지만(?) 이 '이모'이자 아내들은 이자겸에게서 인종을 보호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자겸이 축출된 뒤 당연히 두 사람은 쫓겨났으나, 이 공을 높이 산 덕분인지 죽을 때까지 나름 대접받으며 살았다. 이게 문제였는지 아님 [[성리학]]의 유입 때문인지 그 뒤부터의 왕가에서는 되도록 족외혼을 했으며 친척 간 혼인이어도 근친혼보다는 원친혼을 했다. 그리고 조선시대부터는 왕비와 세자빈 간택에서 이씨를 아예 배제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정빈 이씨]]와 [[영빈 이씨]]처럼 후궁은 가끔 이씨가 있었다.] * 조선 [[정종(조선)|정종]]: 지씨 자매를 후궁으로 들임[* [[지윤]]의 차녀와 삼녀로 언니 쪽이 먼저 후궁이 되었다. 정종의 부인 [[정안왕후]]가 [[불임|석녀]]인 관계로 20년 넘게 자식을 못 봐서였다. 대신 지씨 자매들이 정종의 서자들을 많이 낳아줬다. 참고로 지씨 자매의 언니는 정종의 형 진안대군의 부인이었기에 겹사돈이었다고 볼 수 있다.] * [[한명회]]: [[정몽주]]의 아들 정종성의 딸과 정종화의 딸을 첩으로 들였기 때문에 친자매는 아니고 사촌자매. * [[토머스 제퍼슨]]의 죽은 아내가 시집올 때 [[샐리 헤밍스]]라는 흑인 몸종을 데려왔는데 당대의 초상화를 보면 그의 얼굴은 제퍼슨 아내와 똑같이 생겼다. 사실 그는 제퍼슨의 장인이 집안의 흑백[[혼혈]] 여자 노예를 성관계해버려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샐리 커밍스는 뒷날 아버지 없이 [[흑백혼혈]]인 아이를 여럿 낳았다. 그의 후손들이 유전자 검사를 하니 제퍼슨 가문의 혈족임이 드러났다. 단, 제퍼슨을 옹호하는 쪽은 샐리 커밍스를 임신시킨 사람이 제퍼슨의 조카라고 한다. 조카라 해도 DNA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법이다. * [[키소 요시나카]]: 측실인 [[토모에 고젠]]의 언니가 아들인 키소노 요시타카를 낳았다. * [[카사노바]]: 17살 때의 [[첫경험]]이 '''자매와 [[3P|동시에]]'''였다. * [[프랑스]]에서 이혼법률을 성문화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이혼법을 써 자매와 번갈아 결혼한 기록이 있다. *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의 첩인 미유키 타이유와 오코우가 자매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연인 메리 번즈의 사망 이후 그녀와 [[동거]]하던 여동생 리디아 번즈와 연인이 된다. 엥겔스는 당시의 결혼 제도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리디아 번즈가 죽기 전 종교적 이유로 결혼을 간청하자 [[혼인성사]]를 받고 혼인 신고를 했다. * [[마누엘 1세]]: 포르투갈의 왕으로서 에스파냐와의 관계를 위해 [[페르난도 2세]]의 첫째딸 이사벨과 결혼후 이사벨이 죽자 셋째 딸 마리아와 결혼한다. 마리아도 죽자 페르난도 2세의 손녀인 엘레오노레와 결혼한다. * [[헨리 8세]]: [[앤 불린]]을 2번째 왕비로 맞았고, 앤의 언니인 [[메리 불린]]을 [[정부#s-3]]로 삼았다. * [[루이 15세]]: 넬 후작의 딸 5자매들 중 4명을 애인 삼았다. 그 중 3명은 공식 정부였으며 1명은 즐기는 사이, 남은 한 명은 평생 너도 왕의 애첩 아니냐고 의심받으며 살았다. [[루이즈 쥘리 드 마이넬]] 문서 참고. * [[필리프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필리프 알브레히트]]: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왕족, 1923년에 6촌이기도 한 토스카나의 헬레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탈리아계 분파인 토스카나 대공가 출신, [[토스카나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 [[페르디난도 4세]]의 3남(이지만 형의 뒤를 이어 가문 수장이 된) [[페터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토스카나|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의 딸이다. [[양시칠리아 왕국|양시칠리아]] 국왕 [[페르디난도 2세]] 기준으로 6촌으로, 필리프 알브레히트의 외할머니 [[마리아 안눈치아타|마리아 안눈치아타 대공비]]가 헬레네의 외할아버지인 카세르타 백작 알폰소의 여동생이다.]와 결혼했다가 이듬해에 헬레네가 첫 딸을 낳고 얼마 안 되어 사망하자 1928년에 헬레네의 여동생 로자와 재혼해 2남 4녀를 두었다. * 고노에 아쓰마로(近衛篤麿): [[고노에 후미마로]]의 아버지다. 첫 부인인 카가번 번주 마에다 요시야스(前田慶寧)의 다섯째 딸 사와(衍)가 요절하자 그 동생인 모토(貞)를 후처로 맞아들인다. * 육종관(陸鍾寬, 1893년~1965년 12월 26일): [[육영수]]의 아버지이자 [[박정희]]의 장인이다. 아내가 6명이였고 그 중 2명은 자매였다. 자식은 총 12남 10녀였으며 모두 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 99칸 대가집을 소유한 거부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본처이자 육영수의 어머니인 이경령은, 육종관의 [[축첩]]들을 무척 싫어했다.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서울에서 '''[[마약]] 투약 뒤 3자매와 함께 섹스한''' 엽기남 이야기가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4&aid=0002159364|해당 뉴스]]) * 경남의 모처에서 자매의 아버지가 자매와 한 남자가 동거하는 집을 급습했다. 이 때 대판 싸움박질이 일어나 온 동네에 소문이 퍼져 관계자들 모두가 얼굴 못 들며 살았다고 한다. * 대통령 경호실 소속인 남자의 부인이 사망하면서 애들을 가까운 이모에게 건사시키기 위해 유언으로 친동생과 결혼시킨 일이 있었다. 남편은 박정희 대통령 때 감사에 걸려서 옷을 벗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공무원이 결혼할 때 자매를 첩으로 보내는 문화가 한동안 존재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되면서 공무원 징계 사유 중에 축첩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현 한국 공무원 사회에도 지금도 남아 있어서 [[불륜]]을 저지를 경우 징계를 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만주국]]은 일본 내부에서 일본 제국의 전근대성에 질린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환경에서 교육받은 박정희 입장에선 축첩은 청산해야 할 국가 근대화를 가로막는 전근대 인습 중 하나로 보였을 확률이 높다. 물론 박정희도 상술한 자기 장인이 그런 대상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인터넷상에서 어떤 남자가 [[네이버]] [[지식인]]에 [[크리스마스]]날 모텔 방 값을 물어봤는데, 애인이 둘이면서 자매, 심지어 [[쌍둥이]]라고 밝혔다.[[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2&dirId=1213050104&docId=121303505&qb=7YGs66as7Iqk66eI7Iqk65WMIOuqqO2FlOqwgOqyqQ==&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1&pid=gdr6Iz331xhssvO803Gssv--007676&sid=TQrK67qaCk0AADd8xUI|#]] 이 글이 [[네티즌]]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는다. 욕설은 물론[* 원래 가장 인기가 높은 답안은 '씨발...'이었으나 답 작성자가 계속된 관심에 부담을 느낀 건지 어떤진 몰라도 삭제되었다. 이후론 왼손 오른손 드립이 1위다.] 글쓴이의 오른손 왼손 [[개드립]]부터 샴 쌍둥이 개드립까지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지]]화 움직임이 나타난다. 물론 저 글의 신빙성은 '''없다.'''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4/2012050401142.html|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로 무려 친자매 4명과 결혼한 능력자.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110920092635560&p=seoul|브라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 이쪽은 자매뿐 아니라 [[모녀덮밥]]까지 성공하여 총 3명의 여성들에게 50명의 자녀를 두었다는데, 후손들의 족보 관계가 매우 복잡할 듯하다. * [[태국]]의 한 남성은 '누구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쌍둥이 자매와 '''합법적'''으로 결혼했다. 합법적이면서도 진정한 자매덮밥.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401601024|관련기사]] * [[부탄]]의 선대 국왕인 [[지그메 싱계 왕축]]은 부인이 4명인데 모두 다 한 자매다. 그는 결혼 전에 네 자매 중 맏이를 사랑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했고, 훗날 자기 아들처럼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겠다란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저 왕비가 자기의 동생 3명도 함께 아내로 안 받아들이면 자기도 결혼 안 하겠다고 난리를 피운 것이다. 결국 그 고집에 져서 어쩔 수 없이 4명을 한꺼번에 아내로 맞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나머지 3명의 아내들과도 사이가 좋고 사랑해서 현재까지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지그메 싱계 왕축의 자식들도 이복 형제끼리 사이가 좋아서 3번째 왕비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이 왕위를 승계할 때도 왕실에서 아무런 잡음이 없이 승계를 인정하였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은 작은 어머니이자 이모인 선왕비들하고도 사이가 돈독하다고 한다. * 호주의 한 여성쌍둥이 자매는 서로 더 닮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하는데 더 나아가 같은 남편까지 공유하여 삼각혼을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중혼이 허용되지 않아 허용되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할 것이라고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3/2017012302086.html|관련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