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강총 (문단 편집) == 무덤의 구조 == 압록강 북변의 절벽 위, 약간 높은 미고지에 입지하고 있어 임강총에서 바라보면 [[태왕릉]]과 [[장군총]]이 잘 보이며 도성인 [[국내성]]에서도 임강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입지도 단독 입지로써 보다 빨리 만들어진 왕릉급 내지 대형 적석총들에 비해서 왕권이 신장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부속시설로는 제례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대(祭臺)라 불리는 시설과 배수시설이 있다. 동서 길이가 71m, 남북 길이가 76m, 높이가 10m로 초기에 만들어진 고구려 적석총 가운데서는 가장 크며, 전체 적석총을 통틀어서도 [[태왕릉]]과 [[천추총]]을 제외하면 임강총보다 큰 무덤은 없다. 평면형태는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사각형이라는 뜻으로 말각방형(抹角方形)이라고 분류되고 있다. 이 말각방형이라는 것이 유의미한 속성이 될 수 있는 것은 후대의 적석총들이 비교적 완전한 사각형의 평면을 만드는 것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현 시점에서 비교적 [[통구 고분군]]에서도 빨리 축조되는 무덤의 특징을 보이는 하나의 근거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임강총은 분구의 형태에 따라 계장식[* 계장식(階墻式) 적석총. 계단식 적석총이 아래쪽 계단을 만들고 위로 점차 올려가면서 만드는 형태라면 계장식 적석총은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쌓는 방식이다.] 적석총에서 계단식 적석총으로의 변화 과정 중에 있는 무덤으로 보고 있다. 임강총의 경우에도 분구에 트렌치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때의 제토 과정은 정확한 무덤의 규모와 형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지 분구를 절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완전한 고분 발굴조사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계장식인지 계단식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2004년에 나온 《중국 집안 고구려왕릉 조사 보고서》의 내용으로는 분명 계단식 적석총이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사방법을 보면 봉분까지 파가면서 확인한 것은 분명 아니다. 절개조사에서 다른 양상이 나올지도 모를 일.] 다만 분구의 외형이 계장식 적석총 단계에서 보이는 비교적 간단하게 돌을 깨서 만든 석재를 무덤에 사용하고 있으며 계단의 수도 계장식과 마찬가지로 수십 단(段)에 달하는 등[* 그 외의 공통점으로 계단의 각 단들이 장군총처럼 대칭을 이루지 않고 비교적 난잡하게 쌓는 것이 있다.] 이른 시기의 적석총들인 [[마선구 626호]], [[마선구 2378호]], 산성하 [[전창 36호]], 145호, [[칠성산 871호]]의 특징을 일부 공유하고 있어 계단식 적석총으로의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진 왕릉인 [[서대총]]과 [[우산하 992호|우산하 992호분]]보다는 먼저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 시기의 적석총의 공통적인 특징은 분구의 정상에 도굴갱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파져있는데 이것이 도굴갱인지 아니면 석곽(石槨, 돌널), 광실(壙室)의 자연붕괴의 현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잠정적으로 이른 시기의 적석총의 공통적인 특징, 매장주체부의 석곽(돌널)에서 석실(돌방)으로의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발전과정 상에서 석곽(내지는 광실)을 매장주체부로 채용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게 보편적이다. 다만 전통적 속성과 새로운 속성이 모두 나타나고 있어 분류 명칭은 다소 혼잡함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