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어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일본어 === [[광복]] 이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일본어의 취급은 매우 좋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한국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국어 교육을 금지시켰고, 대신 일본어를 사용할 것을 강요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국어상용패나 딱지 뺏기 같은 한국어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들이 시행됐는데, 마지막까지 국어상용패를 가지고 있거나 딱지를 모두 뺏기면 화장실 청소, 벌금 납부[* 그 당시 벌금 납부라는 벌을 받았을 때 내는 돈은 1전~1원 정도였다. 현대 가치로 하면 약 500~50,000원.] 등의 벌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일본어는 그 자체로 일제 지배의 표상이 되었고, 일본어 단어와 어투는 공적인 상황에서 언어순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1910~20년대생 [[어르신]]들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하며, 일본어를 한국어와 섞어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칠곡 가시나들]]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곽두조 할머니는 숫자를 일본어로 세고 [[구구단]]도 일본어로 외운다. 그리고 다음의 링크에서는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이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H1vGt7x14e4|동영상]][* 그래서 지일파 외교관이자 일본어 통역 교육까지 받은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어 통역을 수행할 때 제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김대중에게는 한번은 회담이 끝난 후 수고했다고 하면서도 어휘력은 좀 더 늘려야 할 것 같다며 소설을 많이 읽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고.] 세 사람은 1920년대 중반생으로 10대 후반까지 일본어 의무 교육을 받았으며, 해방 후에도 인적, 문화적 교류 차원에서, 또 사회 지도층으로서 일본어를 계속 사용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막상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어 단어가 많이 들어왔어도 일본어 자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는 적었다. 일본제국에서 조선인들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문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출판계와 언론계 인력을 충분히 채울 정도는 되어서 1980년대 무렵까지도 수입서적들은 일본어 중역본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이것이 1990년대 이전 서적에서 일본식 외래어 표기들을 쉽게 볼수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났다고 해서 일본어의 잔재가 바로 사라진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수의 일본어 단어들과 속어들은 광복 이후로도 실생활에서 한 동안 계속 쓰였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남은것이 바로 [[현장 용어]]와 경마 용어이다. 남들이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중요한 돈 이야기나 비밀, [[부부싸움]](...) 등..] 나눠야 하거나, 서로의 사투리가 매우 심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에는 일본어로 대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적인 예시가 [[제주 4.3사건]]으로, 본토에서 파견된 [[서북청년단]] 출신 토벌군과 제주도민들이 서로의 [[평안도 방언]]과 [[제주도 방언]]을 이해하지 못해 일본어로 소통했다는 증언이 있다. 한편 친일 성향이 있던 일부 기업인의 경우, 돈을 빌리러 오는 등 원치 않는 [[조선인]] 방문객이 찾아올 경우에 처음에는 한국어로 맞이하다가 속내를 알고서는 일본어로 형식적인 대꾸만 하며 돌려보내기도 했다. 《[[반도의 봄]]》 등의 당시 영화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전의 근대 일본어에서는 [[비탁음]]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운 어르신들 역시 (청소년기 이후에 늦게 배운 경우가 아니라면) 비탁음을 지켜가며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단, [[つ]]의 발음이나 ざ의 발음, 장단음 등의 경우는 당시 조선인들 대다수가 제대로 발음하기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교육 관련 보고서에도 이에 대한 논의를 엿볼 수 있다. 이를 볼 때 이미 한국어에서의 장단음은 언중이 무의식적으로는 구별하되, 의식적으로는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당시 일본어 교육의 영향으로, 한국어의 장단음을 국어학자들과 교육자들이 의식하게 되면서 이를 규범화하고 집중적으로 교육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https://news.korean.go.kr/index.jsp?control=page&part=view&idx=12652|#]] 아무튼 일본어 단어와 용어는 순화대상으로 우선 지정되었으며, 수십년 동안 의무교육의 보편화와 세대 교체에 따라서 직접적인 한본어 사용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다만 그렇다고 일본어의 영향력이 아주 없어진것은 아니었던것이 이 당시의 열악한 출판 및 번역환경으로 인해서 "파소콤"이나 "베트남", "테레비" 같이 일본식 외래어가 퍼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직접적인 일본어 단어는 순화대상이었지만, 외래어에 있어서 일본어의 영향이 남아있던것이었다. 이는 상술하듯이 당대 출판인력들이 국한문혼용체 및 일본어에 어느정도 능숙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대중문화의 경우에는 1970년대부터 애니메이션과 만화, 소설, 게임을 중심으로 수입이 어느정도 이루어졌으나, 드라마와 영화, 가요 등은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수입된것은 방송사와 출판사 차원에서 자체 제작하는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것이 훨씬 싸다는 점 하나때문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배경을 한국, 혹은 서양권 국가로 로컬라이징하는 작업을 거쳤다. 물론 소설은 로컬라이징 그딴거 없이 그대로 들여왔기는 했지만 밀이다. 이 당시의 영상편집기술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영상물의 경우에는 억지로 로컬라이징 했다는 티가 팍팍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제작사에서 하청제작이라도 한것은 그나마 사전 수정이 가능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방송사나 비디오 판매사에서 자체수정을 해야되는 식이었다. 어쨌든 일본 대중문화 개방 자체는 1980년대 후반부터 논의가 슬슬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이 늘어날라고 하면 일본 정관계인사들이 식민지배기를 미화하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의 반발을 늘리는 패턴이 반복되었고, 특히 1998년에는 독도 문제까지 겹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반대여론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여론의 반대가 거셌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부터는 압도적인 반대여론에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와 영화의 수입이 허용되어 케이블 TV를 중심으로 방송이 이루어졌고, 그 이전부터 수입이 활발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이전에는 아동용이나 청소년용 위주로 수입했던것을 주요 출판사와 애니메이션 방송사에서 박리다매로 수입해오고 대 마침 ADSL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마이너 작품들과 비정발 작품들도 손쉽게 볼수있게 되었다. 다만 드라마와 영화, 가요의 경우에는 일본 대중문화계가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일본 실사매체는 몇몇작품을 제외하면 그리 시너지 효과를 못봤다. 다만 이 당시에는 [[모리 요시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한창 집권하던 시대로 한국에 대한 망언을 많이 했던지라, 그 여파로 완전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어차피 2000년대 중반 정도가 되면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통해서 일본 영상물은 손쉽게 볼수있으니 더 이상 당국에서 나서서 개방해야될 이유가 사라진것도 컸기는 했다. 남아있는것은 일본 연예계 관계자들이 얼마 정도의 수익을 거둘수있냐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방송사 사규나 심의규정에 있어서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2011년에는 가사가 사투리일 뿐 일본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무까끼하이]]라는 노래가 단지 담당자가 듣기에 일본어 비슷하게 들린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36836|#]] 그러다가 [[2020년대]]에 들어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한일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23년 7월 12일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완전 개방되면서 이런 식의 일본어 검열은 점차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