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문학 (문단 편집) ===== 적대적인 관계를 허물고 교류할 필요성 ===== “과학기술 시대”의 인문학 - 김영식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에게 인문학의 대상이 고착되어 바뀌지 않고 있고,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나 중국 송대, 또는 기껏해야 서양 계몽사조기 또는 우리나라 개화기의 전통적인 대상과 주제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 후 인간의 삶은 크게 바뀌었고 최근 수십년, 특히 지난 십여년 동안의 인간의 삶의 방식은 엄청나게 바뀌었으며, 따라서 이렇게 변화되어 새로워진 인간의 삶, 문제, 가치 등을 인문적 반성, 탐색의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인문학은 전통적인 인문학의 대상, 주제들만이 아니라 현재의 인간의 삶의 현실과 문제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통적 인문학의 주제와 대상들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르네상스 시기나 송대와 같이 새로운 사상적 조류, 새로운 문화와 사회의 모습이 대두되던 시기에 그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삶, 가치, 문제들이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또한 그러한 새로운 사상, 문화가 새로운 가치, 문제 등을 빚고 있는 시기이고 그런 면에서는 새로운 인문학을 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과학기술 지식이 일반 학문, 특히 인문학으로부터 분리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과학혁명” (Scientific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 과학상의 획기적 변혁이었다. 16, 17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과학혁명의 결과 그 동안의 과학과는 크게 다른 “근대과학”이 형성되었고, 이 근대과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은 기술에 응용이 가능해졌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으며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무엇보다도 ‘전문화’되었다. 그리고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과학은 점점 문화 일반이나 인문학으로부터 분리, 격리, 소외되게 되었던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이같은 유리 상태는 심해지고 차츰 고착화되었다. 그리고 그같은 유리 상태의 고착과 함께 [[과학전쟁|과학과 인문학 양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 상태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당시 새로 부상하는 과학기술이 지적인 우위와 실용적 가치를 내세우는 데 대항해서 인문학 또는 인문주의가 고전과 교양 위주 교육의 도덕적 우위를 선언한 것은 그 같은 예였다. 이는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전통적 인문학자들의 우월감과 반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자들에게서는 이와는 상반되는 태도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문 과학지식에 대해 지니는 과학자들의 전문성을 인문학자들이 존중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존중”은 또 한편으로는 인문학자들이 전문 과학지식을 전문 과학기술자들에게만 맡기고 자신들의 관심 대상으로부터 제외시킨 채 무시해 버리는 효과를 빚어냈다. 게다가 현대의 사회, 문화에서 과학이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오늘날 과학은 사회와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고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기술을 통해서 그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초 자연세계에 대한 지적 추구의 중요성 때문에 지식인의 관심 대상에 포함되어 있던 과학이, 이제는 현대 지식인의 생활의 필수적 부분, 관심의 필수적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은 온통 과학기술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오늘날 인문학자들이 현대 사회, 현대 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과학기술은 제외시키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란 바로 인문학이 과학을 포함한 여러 전문지식으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가 한국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그같은 분리 상태가 한국 사회에서 특히 심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러 의견이 제시되지만 대게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기서 김영식 연구자는 인문학자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비판해야 한다는 정면돌파를 주장했다. 새로운 인문-과학 패러다임의 연구나 과학의 인문학적 환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현대 사회의 주류는 인문학이 아니라 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자가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빈자리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고 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