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파한 (문단 편집) == 역사 == 도시 자체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다. 고대 [[메디아]]의 "아스판다나"라고 불리고 중세 페르시아어로 “군대의 집결지”라는 뜻의 “스파한”이라고 불린 이 도시는 [[이슬람]] 시대에는 아랍어로 “이스파한”으로 불리면서, 오늘날까지도 이 도시 명칭으로 굳어졌다. 중세 [[사산 왕조]] 시대에는 [[야즈데게르드 1세]]에 의해 대규모 유대인 커뮤니티 “예후디예”[* 유대인의 땅이라는 뜻이다.]가 들어서고 상공업이 번영을 누렸다. 사산 왕조가 몰락한 후 아랍인들은 예후디예 지역의 유대인들을 전부 죽이거나 쫓아내고[*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스파한의 유대인들이 거짓 메시아를 지원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유독 이 지역의 유대인들이 생각지도 못한 수난을 당한 것[[https://sunnah.com/riyadussaliheen/19/5]]] 그 자리에 중세 신 시가지가 건설되었다. 이슬람 시대에도 상공업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으며 [[부와이흐 왕조]]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여러 침략자들에게 약탈을 당하기도 하였다. 14세기 [[이븐 바투타]]가 이 도시를 들렸을 당시에는 부와이흐 왕조가 있던 시대보다 한 참 이후에 해당하는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인데도 불구 아직도 부와이흐의 시아파 잔당들과 순니파들과 싸우고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 이스파한은 크고도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순니파와 라와피드[* 순니파에서 시아파를 일컫는 멸칭]의 분쟁으로 인해 지금은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이러한 분쟁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여전히 서로 싸우고 있다. 이곳에는 과실이 많다. 음식에 한해서는 그들 모두가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경쟁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친구들에게 "[[난(빵)]]과 우유를 간단하게 먹고 가게나."라고 말하며 초대한 이후 진수성찬을 베푸는 방식으로 은근슬쩍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사파비 왕조]] 때는 압바스 1세에 의해 수도가 되기도 했는데 아바스 1세가 폐허였던 이곳을 새로 재건하면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이라는 속담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파비 왕조 시절의 이스파한은 [[조지아]], [[다게스탄]], [[체르케스]]에서 인신매매된 노예 병사들[* 사파비 왕조는 라이벌 오스만 제국의 [[데브시르메]]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캅카스 출신 기독교인들을 납치해 강제로 개종시킨 후 군인 노예로 부려 건국 공신인 튀르크계 크즐바시들을 견제하게 했다.][* 조지아인 군벌들이 자발적으로 이스파한에 정착한 후 쉬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도 기록되어 있다. 납치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과 후궁들, 아르메니아인 상인[* 기록에 따르면 무려 30만명]들로 가득했다고 하며, 도시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을 배려하여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건물인 반크 교회가 세워졌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에도 이스파한 주민들은 사실상 [[조지아인]]의 후예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1722년 아프가니스탄에 털리면서 쇠퇴가 시작되었고, 18세기말 [[카자르 왕조]]가 세워지며 수도 또한 [[테헤란]]으로 넘어가 오늘날에는 지방 대도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