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훈(우완투수)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이상훈(좌완투수)|LG의 이상훈]]과 달리, [[1990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했다. [[1993년]]에는 2승 3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하는 등, 삼성 라이온즈의 암흑기 속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1996년 6월 2일에는 현대와 삼성의 인천구장 빈볼 난투극에서 원인 제공자가 되기도 했다. 이날 삼성은 현대와의 원정 주말 3연전에서 모두 패했는데, 일요일인 마지막날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상훈이 3이닝 연속으로 현대 타자들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상훈은 사과는 커녕, '뭘 봐. 불만있어?'라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고, 이에 분개한 현대는 삼성의 마지막 9회초 공격에서 마무리 [[정명원]]이 자진 등판하여 양준혁-이승엽에게 연속으로 고의 빈볼을 던지면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1999년]] 트레이드 마감일이었던 7월 31일, 포수난을 겪고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에서 [[진갑용]]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기 위해 이상훈을 현금 4억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보냈다. 그렇게 삼성에서는 전력 외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투수]]가 부족했던 두산 베어스의 입장에서는 이상훈을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당시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있었던 [[김인식]]은 잘 하건 못 하건, 선발이건 계투건 이상훈을 노예처럼 꾸준히 등판시켜 스윙맨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1군 풀타임 마지막 시즌인 [[2002년]]에는 70경기(8선발) 133 ⅔이닝을 던져 4W 10L 2SV 6HLD, [[평균자책점]] 3.91로 자신의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다. 그렇게 불꽃같은 커리어 하이를 만들고 팔꿈치가 너덜해진 그는 [[2003년]] 12경기에 등판하여 16 ⅔이닝에 9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방출당했으며, 이듬해인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2경기 3이닝 9.00을 기록하고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