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대근 (문단 편집) == 여담 == * 그의 대표작인 <[[뽕(영화)|뽕]]> 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이두용|감독]]이 [[안기부]]에 끌려갔다고. 마지막 장면에 삼돌이가 장승을 도끼로 패는데 장승에 사또를 오버랩시킨 장면에 이거 정부에 대한 저항아니냐고 트집을 잡혔다고 한다. 결국 그 장면을 들어냈다고. 베테랑 배우로서 자신이 볼 때 감독의 연출력에 실망해 '이것도 작품이냐'고 화를 내고 따졌지만 결국 대흥행을 해 미안했다고 한다. 원래 [[나도향]]의 작품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시나리오야 탄탄한 편이고 결국 <뽕>으로 영화평론협회상을 수상했다. * 1970년대 중반 '''이장현'''[* 李章玄]이란 예명으로 활동했지만 몇 년 안 가 다시 본명인 이대근으로 돌아왔다고.[* 당시 비슷한 시기에 이대근과 같이 예명으로 바꾼 연기자가 변인철이었다. 이대근과 달리 변인철은 [[변희봉]]으로 예명을 바꾸어 50년 넘도록 활동했다.] * MBC 시대극 [[공화국 시리즈]]의 고정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영후]] = [[백범 김구]], 박규채 = [[이기붕]], [[김무생]] = [[장면]], [[노주현]] = [[장도영]], [[이창환]] = [[박정희]], [[이정길]] = [[김종필]], [[박용식]] =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이대근 = [[차지철]] 전담이었다. * 연예계 활동을 접다시피 해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연남동의 선민교회란 곳에서 장로를 지냈다고. 보수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좌파는 괜찮지만 극좌는 안되며 그 극좌들이 영화진흥기금을 멋대로 하고 나같은 사람은 영화도 못만들게 했다고 분노를 보였다. 개신교 관련 연기 아카데미[* 피플 지 아카데미]에서 연기 지도를 하기도 했다. * 처가의 반대에도 아내와 어렵게 결혼해 딸 셋을 뒀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서 살던 친구의 동생이라고. 처가도 학자들 집안에 아내도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 좋아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가에서 무명의 배우인 자신을 반대해 식 날 몇 명 오지도 않았었다고. 아내는 물론 딸들도 공부를 잘해 첫째와 둘째는 약학박사로 [[FDA|미국 FDA]]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부부와 딸 셋 가정 모두 [[워싱턴 D.C]]에 거주중이다. * 90년 대 중반 MBC 시대극인 소위 공화국 시리즈에서 이대근은 [[차지철]] 전문 배우였다. 단순 무식 이미지도 잘 맞았지만 딸 셋인 것도 같았고 셋 다 미국으로 가서 산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차지철의 처자들은 81년에, 이대근의 처자들은 그 이듬해인 82년에 미국 이민을 간 것도 소름돋는다. * 첫째딸과 셋째딸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미국으로 일찍 보냈다고 한다. 그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바로 [[미국]] [[뉴욕]]으로 연수를 갔는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미국이 한국보다 백 년은 앞섰구나'란 생각이 들어 딸들을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대근은 기러기 아빠로 미국과 한국을 280번 이상 왕복했으며, 2022년 현재 [[영주권|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세 딸 모두 결혼해 손주가 모두 7명이라고. * 미국에 정착하려고 보니 돈이 너무 부족해 그의 출연작인 <뻐꾸기는 밤에도 우는가>, <시라소니>의 [[VHS|비디오 테잎]]을 내밀고 미국의 은행에서 대출을 5만불[* 당시 강남의 고급 아파트 값은 된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20~30억에 달하는 거금이 될 듯 하다.]이나 받았다고 한다. 교포들도 이건 말이 안된다 진짜 그게 가능하냐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실화라고 한다. * 그는 계약에 관해 승부사 기질이 있었는데, 처음 그가 인기를 얻은 실록 김두한 시리즈를 찍을 때 감독에게 딜을 걸어 40만원 이상 안주면 안하겠다고 버텼다 한다. 그 큰 돈을 시리즈로 받다보니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국에 가서도 은행에서 5만 불을 달랑 출연작 두 편 테이프를 들고가 빌려왔다. 그 길로 바로 미국 현지의 [[YMCA]] 회관에 직접 찾아가 매점 자리를 10년 임대로 따냈다고 한다. 가족들의 미국 생활 수단을 만들어놓고 단신으로 다시 귀국해 본격적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 1970년대와 80년대는 그의 시대였다. 70년대는 액션 배우로 80년대는 에로 배우로 전성기를 달렸는데, 1년에 백 편도 넘는 시나리오가 들어와 회사에서 30개 정도 뽑으면 마지막으로 이대근 본인이 17~18편 정도를 확정해 말그대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고 한다. 80년대 연예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 본인, 2등이 무려 [[이주일]]이었다고. * 대부분의 커리어가 액션 영화와 에로물이지만 [[문예영화]]나 멜로물, 정극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TV도 시대극을 많이 했다. 실생활은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대중의 이미지와 실제의 이대근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 [[신상옥]] 감독이 부인 [[최은희]]와 [[북한]]에 납치돼 선전 영화를 찍던 당시, [[김정일]]이 남한의 최고 배우로 이대근을 지목했다고 나중에 생환하고 나서 직접 말해줬다고 한다.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나까지 납치되면 곤란한데'라며 빅웃음을 줬다고. * 83세의 나이였던 2022년 코로나 시국에 오랜만에 부부가 귀국해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고. 기자들도 만나고 국내 여행도 다니고 바쁘게 보냈다고 한다. 80대가 훌쩍 넘은 거 같지 않은 혈색과 건강이었다. * 18살 터울의 여동생 [[이용이]] 역시 배우이다.[* [[하나뿐인 내편]]에서 [[금옥]] 역할을 맡은 그 배우 맞다.] 매부, 즉 [[이용이]]의 남편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활동했던 배우 [[김일우(1953)|김일우]][* [[1953년]] 생. 10살 연하의 후배 배우 [[김일우]]와는 [[동명이인]]인 배우로, [[투캅스]] 시리즈, [[엽기적인 그녀]]~~아가씨가 떡이 됐네~~ 등 여러 [[한국 영화]]들에서 감초 조연을 맡았고, 1996년 [[학생부군신위]]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4년, [[위암]]으로 [[신부수업]]을 유작으로 세상을 떠났다.]이다. 그리고 이 배우의 정확한 필모그래피는 사실상 정리가 불가능하므로 참고만 하자. 본인도 다 기억 못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영화 및 비디오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