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극용 (문단 편집) == 출신 == [[사타족]](沙陀族) 출신이다. 사타족은 6세기 말 이래 [[돌궐]]으로 알려진 [[튀르크]]계 유목 민족의 일파이다. 이들은 천산 산맥, 즉 톈산 산맥의 동부에 있던 민족들로 대체로 이 부근은 [[토번]]과 당이 계속해서 힘을 겨루던 지역이었다. 사타족은 토번이 강성해지면 그쪽의 영향력을 받다가, 당나라가 강성해지면 당의 간접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러다가 [[헌종(당)|당헌종]]때 당나라에 예속되었다. 당시 이들의 우두머리는 [[주사집의]]라는 인물이었는데[* [[사타족]]의 이칭이 사타족의 족장의 성씨인 주사(朱邪)였다. [[https://zh.wikipedia.org/wiki/%E6%B2%99%E9%99%80|중국어 위키피디아 페이지]] 참고.], 당나라는 그에게 서북 언저리인 음산부의 병마사 직을 맡겨 국경을 지키게 했다. 당나라 말기에는 여러 변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망조에 들게 한 [[안사의 난]]이고, 당나라에 사형 선고를 내린 [[황소의 난]] 또한 유명하다. 그 중간에 끼어 있는 반란이 방훈의 난인데, 지금은 [[듣보잡]]이지만 당시 반란의 규모는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때 주사집의의 아들 [[주사적심]]은 방훈의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워 당나라의 국성인 이씨 성을 받고, 국창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바로 이 이국창의 아들이 이극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