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만조선 (문단 편집) === [[전한]]과의 관계 === [[위만조선]]에 [[전한]]의 사람들이 많이 귀화도 하고, 교류도 활발히 하는 등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다. 초대 [[위만]]왕 대에는 전한에 외신으로서 조공하고, 그 대가로 주변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우위권을 인정받으며, 선진 문물을 교류하는 등 한 제국의 조공-책봉 체제에 포함되어 발전을 했다. 하지만 제3대 [[우거왕]] 대에 들어서면서 [[진국(국가)|진국]]과 한 제국간의 직접 교역을 막고, 무역을 독점하는 등 반한 노선을 추구하자, 분노한 전한에서 군사적, 외교적인 압박을 주며 신하국이 되라는 등 마찰이 점차 생기자 결국 '''[[왕검성 전투|전쟁]]'''이 벌어졌고, 국력에서 열세였던 [[위만조선]]은 당해낼수가 없다가 그로 인한 내분으로 우거왕이 살해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다만 이후 한나라가 한반도 남부 삼한 거수들과 가졌던 관계가 재미있는데, 위만조선이 건재했을 때는 한반도 남부 세력들과 직거래를 트려고 했었고 위만조선이 반대해서 위만조선을 멸망시켰던 것인데, 실제로 거래할 때는 편의성을 이유로 늘 중개 세력을 선정해서 무역을 했다는 점이다. 소위 마한왕, 진한왕, 변한왕이라고 일컬어지며 다른 마한 거수들보다 명분상 우위에 있던 세력들이 그것이다. 한나라가 보기에 이런 군소세력들은 낙랑군을 위협하기엔 다소 약소했다고 판단되었고, 일일히 군소 거수국들과 무역하기엔 번거로웠는지 위만조선에게 했던 것과는 달리 꽤 유화적으로 나온 편이다. 그러나 삼한 세력의 역량, 그중에서도 마한의 역량이 점차 성장하는 것에 중원 제국이 경각심을 느끼게 되면서 이런 관계는 바뀌게 된다. [[기리영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