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소양왕 (문단 편집) === 재위 말기 === 연 소양왕 30년(기원전 284년), [[제민왕|제나라 민왕]]은 임치가 함락되자 남은 땅이 [[거]](莒)와 즉묵(即墨)뿐이라 결국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래서 초나라의 장수 요치(淖齒)가 오기는 왔는데, 그가 오히려 제 민왕을 배신하여 감금하니 결국 제 민왕은 굶어죽고 만다. 하지만 악의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왕손 가에 의해 즉위한 제 양왕이 연나라를 상대로 즉묵에서 항쟁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연 소양왕 33년(기원전 281년), 연 소양왕은 장군 [[진개]](秦開)를 보내 [[동호]](東胡), [[고조선]](古朝鮮)을 쳐서 동호의 땅 1천 리를 포함해 요서와 요동에 걸친 2000여 리의 땅을 차지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만번한까지 넓혔다고 한다. 그 위치가 어딘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현재 요동의 천산산맥 부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연 소양왕 35년(기원전 279년), 결국 연 소양왕이 훙했다.[* 일단 왕이긴 해도 주나라 천자가 아니므로 훙으로 표기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