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주십일 (문단 편집) == [[병자호란]]과 연관된 언급 == 학살에 가담한 청나라 병사들 중에서 [[병자호란]]에 참전한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어, 한국사와도 연결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청나라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아이신기오로 도도]]도 병자호란에 종군한 인물이었으니 병사들 가운데서도 그런 자들이 있다고 해서 딱히 놀라울 건 없다.) >세 병사는 우리들을 어느 저택으로 몰아넣었는데 그 안에는 미모의 여자 몇 명과 다른 만주 병사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끌려온 우리를 보고 크게 웃었다. 부녀자들과 남자를 분리해 각각 다른 방에 몰아넣었다. 우리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보고 미모의 여인들이 아양을 떨면서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칼을 빼앗아 그들을 베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운 지경이었다. 병사가 이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병자호란|우리가 고려를 정복할 때]][* 고려라고 썼지만 당연히 조선을 의미한다.] 고려 부녀자 수만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몸을 내맡기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어찌하여 중국이 수치심을 모르는 게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이게 바로 [[적반하장|너희들이 이런 난리를 겪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후대의 재발견 문단에 나온 것처럼 만주족 스스로가 중국 병합과 병자호란의 업보를 치르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사적 디테일이 있는지라, 만일 양주십일이 위작이라면 지금은 실전된 어떤 원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