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양시 (문단 편집) === 과거의 안양 서울 편입 떡밥 === 시흥군 안양읍 시절에는 [[서울특별시|서울]]과 [[수원시|수원]]을 잇는 중간점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잡지)|뿌리깊은 나무]]' 시리즈를 비롯한 지리 관련 서적에서는 안양 일대를 일컬어 ''''사실상의 남서울''''이라는 언급이 많이 나왔었다. 게다가 1970년 [[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기도 내 서울시 도시계획구역[* 지금의 [[광명시]] 북부, [[과천시]], [[고양시]] 신도, [[부천시]] 고강ㆍ원종 등] 뿐만 아니라,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전역, [[성남시]] 및 [[하남시]] 각 일부, [[광명시]] 남부, [[부천시]] [[오정구]] 잔여지역, 안양시 전역을 포함하는 서울시 추가 확장안을 건의 하였었다. 그래서 1973년 안양시 승격 당시, 서울 편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일부 주민도 있었다.[* 이는 같은 해 [[성남시]] 시 승격 당시에도 비슷했다. 서울시가 서울시내 빈민들을 쫓아내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성남 본시가지(광주대단지, 통칭 구성남)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측면에서 구성남의 서울 편입 논의가 잠깐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에 정식으로 포함되어 본격 주거지로 개발된 지금의 [[광명시]] 광명동, 철산동마저도 이때 서울로 편입되지 못했는데, 구성남의 경우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하지도 않았고 서울특별시 당국이 빈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만든 도시라는 측면에서, 구성남의 서울 편입은 가능성도 타당성도 없었다.]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안양 LG 치타스]]는 안양에서 서울로의 연고이전이 아닌 경기장 이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양시가 경기도 중부권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여 어느 정도 독자적인 [[생활권]]이 형성됨에 따라, 자연스레 서울 편입 떡밥은 잠잠해졌고 대신에 '''지금은 광역시 승격이라는 속마음을 염두에 둔 안양권 통합 떡밥이 우세한 상황이다.''' 안양은 이미 대도시 특례를 받는 도시이고, [[군포시]] 26만여 명에 [[의왕시]] 15만여 명을 더하면 96만 명이 되어 93만 명의 [[화성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