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성녀 (문단 편집) == 생애 == 1881년경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에서 진사 안태훈과 [[조마리아]] 사이에서 3남 1녀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오빠로 [[안중근]]이 있었고, 남동생으로 [[안정근]], [[안공근]]이 있었다. 그녀는 부친의 뜻에 따라 가족과 함께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권승복과 결혼해 외아들 권헌을 낳았다. 안성녀는 1900년경부터 오빠 안중근과 함께 하얼빈에서 살다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이듬해에 어머니 조마리아, 남동생 안정근, 안공근과 함께 연해주를 거쳐 중국 지린성 왕청현 석두하자로 이주했다. 이후 곤궁하게 살다 가족을 따라 중국 허베이성으로 이주했고, 다시 상하이로 이동했다. [[중일전쟁]] 시기 안공근을 따라 충칭으로 피신했고, [[8.15 광복]] 후 외아들 권헌, 며느리 [[오항선]]과 함께 국내로 귀국했다.[* 남편 권승복은 1920년 7월 3일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안성녀는 귀국 후 서울 청파동과 쌍림동 일대로 거처를 옮겨다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했다. 그녀는 부산에서 부산시장이 마련해 준 영도 봉래동의 두칸짜리 가옥에서 살았다. 하지만 같은 집에서 살던 다른 피난민이 불편해 하자 영도 신선동 2가 2번지 산비탈로 옮기고 그곳을 새 본적지로 등록했다. 당시엔 부산시 직원이 매일 그녀의 거처를 방문해 안부를 물을 정도로 신경썼다고 한다. 1954년 4월 8일, 안성녀는 부산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당조카아들 [[안춘생]]은 이 소식을 듣고 헌병 2명을 앞세워 군용 지프차로 달려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쌀 한 가마니와 생활비가 든 봉투를 유족에게 바쳤다고 한다. 안성녀의 유해는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고, 1973년 묘비가 세워졌으며, 2016년에 재정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