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상수(창원) (문단 편집) === 국회의원 시절 === 1995년 변호사 시절부터 똑같이 검사 출신이었던 [[홍준표]] 변호사와 함께 국민회의 영입설이 나돌고 있었으나, 이듬해 연초에 박종철 사건 수사를 했다는 이미지에 힘입어 [[신한국당]]에 입당하고 그대로 공천을 받아 [[경기도]] [[의왕시·과천시]]에서 제15, 16 ,17, 1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7대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장을 2005~2007년에 역임하기도 했다. [[친이]] 핵심으로서 한나라당 원내대표직을 2007~2008, 2009~2010년 2번에 걸쳐 맡았다.[* 또 2009~2010년에는 한나라당이 여당이었기 때문에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직을 겸했다.] 여담으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집권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자,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부산 [[영도구(선거구)|영도구]] 지역의 5선 중진인 [[김형오]] 의원에게 밀리며 국회의장이 되지못했다. 2010년 6월에 실시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회 지선]]의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몽준]] 대표의 뒤를 이어 2010년 7월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들 또한 [[홍준표]], [[나경원]], [[정두언]], [[서병수]]로, 친박계 3선 서병수를 제외하면 모두 친이로 분류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3380820?sid=001|#]] 이로서 안상수 대표체제 또한 직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박희태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친이 위주의 지도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자연산' 발언과 안상수의 이미지를 제대로 깎아먹은 '[[보온병]] 포탄 실언'[* 이후 국회에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보온병 아저씨'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라다니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한동안 칩거했다.]이 터진게 이 시기이다. 또한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옆집 개 소송' 사건으로 인해 홍준표의 맹공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패배[* [[김무성]] 원내대표가 선거 이틀전에 "분당주민들, [[손학규]]를 [[한나라당]] 후보로 착각"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고 [[엄기영]] [[강원도지사]] 후보 불법사무소 논란 등의 악재가 있었다.]의 책임을 지고[* 이후 또 다른 악재가 터졌는데,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구 을]]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대표 [[손학규]]가 [[당선]]되는 참사가 터졌다. 한나라당에서는 당 대표를 지냈던 5선의 [[강재섭]] 상임고문이 출마했으나 [[낙선]]한 것. 그리고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뉴스데스크 앵커로 유명했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최문순]] 전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이런 충격적인 패배가 기폭제가 되어 2011년 5월, 당대표에서 사퇴했다. 설상가상으로 [[박희태|전임 대표 중 한 명과 연관된]] 전당대회 돈봉투 루머까지 돌면서 이미지가 골로 갔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의왕시·과천시]]가 전략 공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컷오프]] 되었는데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변을 밝히며 불출마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