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상수(창원) (문단 편집) === 정치권 입문 이전 === [[마산고등학교]](23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해 [[검사(법조인)|검사]] 생활을 한 검사 출신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서울지검 평검사였고, 부장검사인 [[최환]]의 지휘를 받아 해당 사건을 수사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상수가 해당 사건 해결의 주역을 자처한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가장 큰 배경은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http://www.pasthistory.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6&nttId=41250&categoryCode2=THREE|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최환 부장검사의 지시로 안상수가 박종철의 시신을 보전하고 부검하는게 기여한 내용이 담겨있지만, 한편 수사 과정에서 추가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자백받고도 상부에 보고 후 3개월이나 기소를 하지 않다가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이후 추가기소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안상수가 박종철 관련으로 책을 쓰고, 그 인세를 기부한다고 했던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인세를 거부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031|관련기사]] 심지어 박종철의 1년 선배였던 서울대학교 [[조국(인물)|조국]] 교수도 안상수의 역할을 부정했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14632.html|관련 기사]]. 당시 구속되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외부에 알린 [[이부영]]의 편지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한 것이 뒤늦게 드러난 한재동 당시 교도관도 주도를 [[최환]]이라고 증언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2353|관련기사]]. 안상수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안상수가 관련 책[* 1995년 동아일보사를 통해서 출판한 《이제야 마침표 를 찍는다: 박종철 사건 수사 검사의 일기》가 대표적이다.]을 쓰고 스스로의 공적을 과장해서 알린 반면에, 이후에 꾸준히 법조계에 몸담았던[*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은 검찰 내에서 공안통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차장검사 승진, 1995년 서울지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1999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그리고 이 때의 활약이 인정되어, 명예 광주시민으로 인정받았다.] 최환 당시 공안 부장검사나, 퇴직 시까지 스스로의 신분도 알리지 않았던 교도관 등은 외부에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에 들러리는 커녕 수사를 방해했던 주제에 [[최환|상관]]의 공을 가로챈 기회주의자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아직까지도 선거 때마다 민주 검사 드립을 치고 있다. 물론 사인을 밝혀내기 위한 부검 과정에서의 기여는 인정해야 한다만...[* 이러한 시선이 고개를 들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안상수가 치안본부와 남영동에 맞서 부검을 주도하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재미있게도 이런 논란이 고개를 든 이후인 2017년에 개봉한 영화 1987에서는 의사들에게 절차상 하는 건데 대충 하자고 말했다가 상사인 최환 공안부장에게 못된 것만 배웠다며 쪼인트를 까이는 역할로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