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습착치 (문단 편집) == 한진춘추 == 습착치의 대표 저작인 한진춘추는 [[후한]] [[광무제]]로부터 [[서진]] [[진민제|민제]] 시대까지 서술한 역사서이다. 습착치는 한진춘추에서 [[위(삼국시대)|조위]]는 후한 [[헌제]]를 [[협박]]하여 거짓 [[선양]]을 받은 역신 [[조비]]가 세운 나라이므로 [[사마염]]이 조위로부터 선양받아 [[서진|진나라]]를 세운 것 역시 정통성에서 유효하지 못하다고 평하였다. 또한 [[사마소]]가 촉한을 평정함에 따라 한이 멸망하여 진나라가 흥했다고 평가하여 하늘의 뜻은 세력이 있고 권위를 강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일명 '''[[촉한정통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습착치가 살았던 때는 사마씨가 강남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습착치가 촉을 정통으로 삼은 것은, 중국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던 동진을 삼국 시대 촉한에 투영한 것이었다. 즉 습착치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치 체제인 동진과 그 주인 사마씨를 위해 복무했던 것이다.[* 이는 진수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습착치는 진나라와 사마씨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서술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사마사]]가 [[제갈각]]에게 패했을때 사과하자 한 찬양이나 [[사마소]]가 [[제갈탄]]을 물리칠 때 찬양을 들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자치통감]]의 음주자 호삼성도 그 언사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평한 바 있다.] 한진춘추가 촉한을 정통으로 세운 것은 남조의 역사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쳐, [[유송]] 이후의 사가들도 습착치가 옳고 진수는 그르다고 주장하고는 하였다. 고국항 등 근현대의 사학자들은 이러한 봉건적인 전통관념의 한진춘추보다는 진수의 삼국지가 실제 역사에 부합한다고 하여 정사 삼국지를 재조명한 바 있다. 한진춘추는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삼국지(정사)|삼국지]]의 [[배송지]] 주석에 내용이 다수 인용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