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조 (문단 편집) == [[어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순조어진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순조어진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순조어진3.jpg|width=100%]]}}} || ||<-3> [[부산 용두산 대화재|{{{#gold '''부산 용두산 대화재'''}}}]] {{{#gold '''당시 반소된 순조의 어진들'''}}} || [[일제강점기]] 당시 순조의 어진은 원유관본 2점, 익선관본 대본, 소본 각각 1점으로 총 4점이 전해져오고 있었지만 [[1954년]] [[12월]]에 발생한 [[부산 용두산 대화재|대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순조 어진의 경우도 다른 어진들과 동일하게 돌돌 말려진 상태에서 화마에 휩싸였으며 불을 끄려고 물을 끼얹은 탓에 위 어진들을 자세히 보면 표제의 붉은 부분이나 색소 등이 다른 곳으로 번진 걸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어진이 '''얼굴'''을 포함해서 반 이상이 타버리는 바람에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불운은 아예 없어져버린 [[정조(조선)|아버지]]부터 [[효명세자|먼저 저세상으로 간 아들]]과 [[헌종(조선)|손자]]에게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왼쪽 어진은 이후에 모사된 [[고종 황제]]의 어진과 유사하게 원유관에 강사포를 착용한 형태로 [[1830년]] 당시 41세였던 순조를 모사한 것이다. 표제 바로 앞에는 고종에 의해 황제로 추존된 직후 부가된 붉은 비단이 보인다. 가운데 어진은 경운궁 내 선원전의 화재의 영향으로 [[1900년]]에 왼쪽 어진을 그대로 모사한 이모본이다. 전체적으로 큰 차이점은 없지만 강사포의 색상이 더 붉게 표현되었고 음영도 강하게 처리되어 있다. 얼굴 부분이 완전히 없어진 왼쪽 어진과는 달리 이 어진은 그나마 구레나룻 부분만큼은 남아있다. 오른쪽 어진은 훼손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해''' 화문석의 일부만 남아있으며 표제도 중간중간이 타버려서 일부만 판독할 수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표제부분과 [[1935년]]에 작성된 관련 서류를 검토한 결과 이 어진은 순조의 익선관본 '''대본'''이라는 것을 최종 확정할 수 있었다. 가운데 [[어진]]을 제외한 나머지 어진들은 훼손 상태가 심각한 탓에 보존처리만 마치고 그동안 [[국립고궁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 보관되어왔다가 [[2019년]] 하반기에야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순조추정어진..jpg|width=100%]]}}} || || {{{#gold '''순조 추정 어진'''}}} || 위 어진은 반신상의 어진으로 순조의 익선관본 소본으로 '''추정'''되는 어진이다. 신원미상의 어진으로 남은 까닭은 당연히 대화재의 영향으로 표제가 타버린 탓에 (다만 순조의 어진일 가능성은 크다.) 만약 이 어진이 순조의 어진이라면 아직 수염이 많지 않은 얼굴로 미루어 보아 채 스무 살도 안 된 [[1808년]]경에 모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위 어진이 순조의 어진으로 최종판정된다면 순조의 어진은 다른 조선왕들과는 달리 추존왕인 [[정원군|원종]]과 함께 유이하게 결본(缺本)이 없는 어진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기했듯 [[부산 용두산 대화재|대화재]] 직전까지 순조의 어진 수는 총 4본이었으니 말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87fnvr.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MR3wAd.png|width=100%]]}}} || || {{{#gold '''《선원보감》에 실린 순조 초상화'''}}} || {{{#gold '''《열성어진》에 실린 순조 초상화'''}}} || 《선원보감》과 《열성어진》에서 실린 초상화가 있다. 그러나 《선원보감》과 《열성어진》의 초상화는 대체로 실제 외모와 괴리가 크다. 《순조실록》에서 순조의 용모를 묘사한 대목을 보자. > 상(上)은 자표(姿表)가 특이하여 넓은 이마와 높은 콧마루에 네모난 입과 겹턱을 가졌는데 용안(龍顔)은 불그레하고 체상(體相)은 풍만하고도 장대(莊大)하였다. 그리하여 바라보면 엄연(儼然)한 위엄이 있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는데, 앞으로 나아가면 온화(溫和)하게 덕(德)이 있어 친근함을 느끼게 하였다. >---- >[[http://sillok.history.go.kr/id/wwa_200005|《순조실록》, 순조대왕 묘지문(誌文).]]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순조는 일반적인 미남상은 아니지만 나이 들수록 멋들어지고 푸근해지는 그런 외모인 것 같다. 또한 기록을 보면 [[정조(조선)|정조]]와 닮은 얼굴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정조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에는 높은 코와 네모난 입에 겹진 턱을 가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