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양공주 (문단 편집) == 기타 == 이형에게 선천적으로 부족한 내치계열을 보충해주는 아내. 캐릭터 자체는 직접 전면에 나서는 일 없이 오직 남편의 내조에만 힘쓰는 전형적인 [[현모양처]]형 캐릭터이지만 지나치게 술판을 키우려는 이형을 말 한마디로 진정시킨다던가 후사를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마냥 얌전하고 조용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작품 특성상 자주 부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알고보면 매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녀가 조선의 황후로 들어온 이후부터 이제까지 조선 황실 내부에서 특별히 큰 일이 터졌다는 묘사가 전혀 없다. 즉, '''조선 황실의 안주인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맡고 있다'''는 것. 비록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등교육을 받아온 공주이고, 황실 내부 암투로는 조선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살벌한 청나라 출신이며, 황제의 총애를 두고 경쟁할 비빈들이 없다는 걸 감안해도 고작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실상 혈혈단신[* 외국으로 시집을 왔으니 외척이 존재할 리 없고, 가장 강력한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공친왕 역시 조선 황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공친왕은 자신의 남편인 이형(의 대한제국)과 다른 열강의 힘에 의지하여 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그녀가 외부의 도움을 받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으로 외국에 시집와서 몇년만에 황실 내부를 제대로 휘어잡았고 한 나라의 국모라는 막중한 역할 역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거기다 수렴청정 초반에 김좌근에 도발에 맞선 이형의 파천황적인 행보에 충격을 받은 조대비가 리타이어한 뒤 조용히 살다 가게 되자 그녀는 왕실 최고 어른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었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일화로 후사 만들기 작전(?) 당시 그녀가 내관에게 직접 명령해서 이형이 따로 숨겨놓은 술을 치우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황후의 명령이라고 해도 황제가 직접 준비한 물건을 일개 내관이 멋대로 치워버린다는 건 그만큼 황후의 권위가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는 남편 못지 않게 비범한 인물. 게다가, J.P 모건이 선물한, 호화로운 마차에 대한 지적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 황실의 사람으로서 온갖 고등교육을 받고 호화로움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격조 있는 화려함에 대한 안목을 갖췄다. 이는 이형의 취약한 부분 중 하나인데, 때문에 청을 뛰어넘는 열강이 된 대한제국 황실의 문화를 정비하는 건 그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듯하다. 이 밖에도 국고 충당 겸 기병 육성을 겸하여 경마를 도입하려는 이형에게 흥이 많은 조선 팔도의 백성들이 경마에만 빠지지 않게 관심을 분산할 놀이문화를 만들면서도 경마를 통해 생산될 우수한 말에 어울릴 병력 육성을 동시에 해결할 방책으로 석전 금지령과 택견의 국기 채택을 제안[* 다른 나라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다면 잉글랜드에서 강요에 가깝게 요먼들에게 활쏘기 장려 정책을 시행하여 대규모의 [[장궁병]] 부대를 육성한 게 있다.]하는 등 문화면에서는 이형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이형 스스로 독백하기를 소양공주가 어느 정도 국책에 사심을 끼워넣은 무리한 부탁을 해도 웬만해서는 다 들어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소양의 행적은 문화교육면에 치중되었고, 그녀 본인은 좋은 의미로도 현모양처에 가까운 인물이라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단적 예로 이하응, 박규수와 비교해도 범아시아 조약의 목적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그저 시큰둥했다.] 그런 그녀답게 자녀들의 교육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데, 경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태자를 밖으로 내보내고 내각 총리대신인 박규수에게 김홍집을 태자태사로 추천받는 걸 보면 아무리 황후일지언정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학부모 같은 면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불교를 우대하던 청나라 출신답게 불교도다. 조계종과는 종파가 다른 티베트 불교지만 거의 대승불교적인 면을 공유하고 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나라 황실이 티베트 불교를 보호하고 달라이 라마를 황제의 스승으로 모셨던 건 칭기즈칸 이래로 만주와 몽골의 귀족들부터 일반 계층에 이르기까지 티베트 불교를 믿는 게 생활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종교의 권위를 빌어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하고 황실의 친위대이자 무력기반인 만주+몽골 팔기군을 통제하에 두려 한 게 청의 애신각라 황실이었다. 특히나 청나라의 불교 우대는 절대로 신라나 고려의 그것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신라나 고려는 그저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종교일 뿐 역대 왕들이 반드시 불교를 밀어줘야 하는 이유는 없는 만큼 고려같은 경우 성종은 상대적으로 불교를 억제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다. 당연히 성종도 불교를 옹호해줬지만 그럼에도 성종이 불교를 억제했다 볼 수 있는건 불교 행사인 팔관회와 연등회를 폐지했기 때문이다.(이후 둘 다 현종 시기에 부활한다.)] 하지만 청나라는 ''''키메라의 제국''''이라 불릴 만큼 별별 성격이 다른 지위가 여기저기 얽혀 있었고 개중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수호자 자리도 있었다.[* 현대로 치면 사우드 왕조가 가지고 있는 두 성지의 수호자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아예 지위 자체가 티베트 불교 수호자이니 그런 나라에서 온 왕족이라면 당연히 티베트 불교에 우호적이면 우호적이지, 적대적일 리가 없다. 그렇다 보니 그녀도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덕분에 그동안 마땅한 비호세력 하나 없던 조선 불교계의 새로운 버팀목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조선 역사로 치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성종 시기에 인수대비가, 명종 시기에 문정왕후가 불교 옹호에 나섰던 것에 가깝다.] 당연히 소양공주도 불교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거기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이형은 덤) 자연스레 조선 불교계는 친황실파의 성격을 띄게 되어 적극적으로 국가 사업들에 협조하게 된다. 게다가, (냉정하기는 해도) 궁중암투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인 이형과는 다르게 청 황실의 사람으로서 궁중암투에 해박한 걸로는 이하응 못지 않은 그녀인 만큼, 대한제국 황실의 안위를 위해 '''(혈통 상) 시아버지'''[* 고종은 '''족보상'''으로는 [[효명세자]]의 양자다.]인 이하응을 경계 중이다. 실제로 이하응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최익현을 통해 전국 유림에 퍼트리려던 박규수가 '''자신의 강직함을 이용해 먹으려는 심보'''에 화가 난 최익현이 침묵하면서 실패로 끝나게 되자,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게 해서 최익현이 움직일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기도 하는 등, 암투를 꾸미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설 연재 당시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청나라 복식을 입은 굉장한 미모의 여성 사진이 소양공주의 원본 인물인 영수고륜공주의 어릴적 사진이라고 잘못 알려졌고 주인공 이형이 부럽다는 등의 반응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 인물은 완안입동기(왕민동)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며 살았던 시기도 다르고 청나라 공주도 아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314173|#]] [[분류: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등장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