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균관대학교 (문단 편집) == 여담 == * [[대한민국 원|대한민국 지폐]]를 패러디한 [[짤방]]이 나름대로 유명하다. 다만 [[퇴계 이황]]은 오늘날의 성균관대학교 총장에 상응하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교수]] 정도가 아니라 [[총장]]이 더 어울릴 법하다. 천 원권 지폐 앞면의 건물이 성균관 [[성균관#강학 영역|명륜당]]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Lv71sbv.jpg|width=100%]]}}} || * 인문사회과학캠퍼스를 기준으로 할 때, 캠퍼스가 수도 [[서울특별시]]의 도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왕궁]]이자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창경궁]], [[창덕궁]] 등과 접하고 있으며, [[북악산]] 위에 캠퍼스가 걸쳐 있기 때문에 학교 정상부(법학관, 수선관 등)에 가면 굳이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반대로 서울타워를 쉽게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인 서울의 경치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후문 쪽으로 나가서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말바위 전망대나 북악 스카이웨이에 도달할 수 있는데, [[경복궁]]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학로(서울)|대학로]] 역시 과거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을 빠져나와 휴가를 즐기던 반촌 터에 조성된 상권이므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로는 현재도 과거 성균관 인근의 반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인 [[북촌]], [[인사동(종로구)|인사동]], [[삼청동]] 등도 곧장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법학관 옆 샛길로 빠지면 바로 위치해 있다.] * 과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학교에서 넘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엄격히 통제되어 관람 가능한 [[창덕궁]] 후원도 마음대로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밤에 궁궐로 들어가 달빛을 즐기며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다. 지금은 높은 담벽이 궁궐과 캠퍼스를 갈라놓고 있다. 법학관 앞 대운동장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무 숲은 [[창덕궁]]의 후원이다. * 2016년 영국 THE에서 선정한 4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대학 TOP 25에 아시아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https://www.timeshighereducation.com/features/top-25-universities-over-400-years-old|출처]]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와 교육 연수 및 교환학생을 비롯하여 여러 공동 연구를 통해 국제 교류하는데 상호 관계가 긴밀하다. * 90년대까지 성균관대학교에는 신입생이 해야 할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특정 학과에서만 전해지는 전통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총 동문회에서 저 이야기 나온적 있는데 80년대 90년대 학번들도 아무도 모르고, 체대 건물 옥상에서 고기 구워먹는 이야기만 나왔다.] >첫 번째는 교문부터 후문까지 중앙선 밟고 걸어보기. >두 번째는 금잔디 소라껍데기 뛰어올라가기. >세 번째는 은행나무 위에서 하룻밤 자기. * 첫 번째의 이유는, 원래 성균관대학교의 중앙 도로는 그냥 공용도로였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용도로는 아니였으나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 부지가 구분되었을 시절 그 소속이 애매한 부지인 상태에서 일종의 국유지로 치부하던 곳.] 그래서 90년대 중반까지 시내버스가 이 길을 그냥 다녔는데, '이 도로는 우리 학교 땅이다'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이 일종의 땅밟기를 한것. * 두 번째는, 원래 금잔디광장에는 조개탑이라 불리는 노천무대가 있었다[* [[파일:금잔디 소라껍데기.jpg]]]고 한다. 지금의 노천극장 따윈 당연히 없던 시절. 90년대까지 수많은 민중집회나 학내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학생의 패기를 시험한다는 의미에서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손대지 않고 한 번에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사람은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전설이. 그러나 진짜로 꼭대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 세 번째는, 성균관 안에 엄청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거길 올라가 보면 의외로 평평해서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담력 테스트로 거기서 하룻밤 자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 졸업 전까지 한 번쯤은 비원으로 월담해 들어가보기라는 업적 퀘스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아마도 로스쿨 시행 이전 시기의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 동아리가 약 500여개정도 존재한다. *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 밖에도 만학도 체육, 예술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 특성상 현역 삼성 스포츠단 선수들이 재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승엽]], [[정성룡]].] 특히 배구에서는 상당한 수준급을 보여주고 있으며 야구에서도 이연수 감독의 지도 하에 프로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 또한 [[미식축구]]부는 1957년 결성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식축구팀이며, 2012년에는 동문들이 미식축구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학내에서 아마추어 야구,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부 활동이 활발한 편.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성대 스포츠단 축구부와 농구부는 [[설기현]], [[김상준(농구)|김상준]] 등이 지도자로 오며 분위기가 막장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 성균관대의 학풍은 개방적인 성향이다. 성대 학부 출신이 아닌 타대 출신 대학원생이나 교수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주류로 받아주는 문화가 있다. 이는 외부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출신이나 문화에 대해 포용적이며 상호 조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 [[서울 2033]]에도 나오는데, 성균관대학교 학생이 제작하였기 때문에 근처 주점 이름을 패러디 하는 등 묘사가 매우 상세하다. * 인사캠 교정에는 [[청룡]] 두 마리가 똬리를 튼 청룡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과거에 청룡에서 모티브를 딴 마스코트가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000년대 중반까지 같이 자취하는 룸메이트끼리 방열쇠를 주고받기 어려울 때 이 청룡상의 청룡 입속에 열쇠를 넣어놓고 찾아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 청룡상은 현재 비천당 위치에 있던 청룡 분수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비천당이 복원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분수의 기능은 사라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bluedragon.jpg|width=100%]]}}} || || '''청룡상''' || * '여자 두 명이 자과캠에 있는 [[김창숙]] 동상 앞을 지나가면 김창숙이 지팡이 버리고 뛰어 온다'는 옛날 옛적 슬픈 전설이 있었다. 자과캠에 여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 생긴 전설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한다.김창숙이 밥에 눈물을 흘린다든지. * 자과캠에는 후문에서부터 1학년들이 많이 수업을 듣는 생명공학관~제1과학관까지 가는 길 맞은편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조명도 마땅히 없고 풍물공연용으로 만들었음직한 구덩이가 있다. 나무가 많아 생각보다 조용하고 밤에는 운동장에서 새어드는 희미한 조명 덕에 교내커플들의 밀회장소로 꼽혔었는데 그 탓인지 밤 7시 이후로 이 길을 혼자 걸으면 3년간 여친이 안 생긴다고 한다. * 90년대 삼성이 컴백한 직후 메이저 일간지 하단에 실렸던 삼성 래미안(율전) 광고에서는 "성균관대학교를 공원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식의 홍보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 1997년 성균관대학교의 [[삼성]] 재단 영입과 관해 여러 풍문이 떠도는데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말 대학을 운영하고 싶었던 삼성이 인수 후보군으로 다른 대학들을 눈독들이고 있었지만 재단이 비협조적이어서 포기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였다거나 성균관대학교가 싸게 나와서 사들였다는 등의 루머를 퍼뜨리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삼성이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맡은 것은 1996년이 최초가 아니며, 과거에 1965년부터 1977년[* 77년 학내분규로 삼성이 성균관대에 철수하게 되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성대재단이 삼성 이병철회장을 이사장으로 받아들인 이후 유림과 갈등이 많았다. 유림 측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균관대학교 부지였던 안양땅을 삼성계열사에 팔아넘긴 후 나온 4억의 돈으로 수원 삼성공장부지로 매입해 놓았던 부지로 정하면서 성균관대의 자산을 삼성이 이윤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또한 당시 30만평으로 약속되었던 수원캠퍼스 부지가 15만평으로 줄었으며 이는 삼성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에 반박하는 입장은, 재단 내 영향력 축소에 대한 유림들의 반발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런 대립 구도가 학내 분규사태로 이어졌다. 즉 이병철과 유림의 갈등이 삼성재단 철수의 원인이었다.]까지 삼성문화재단이 성균관대학교의 운영에 참여했고, 재단 이사장이 [[이병철]] 회장이었다. 이후 제15대 [[장을병]] 총장이 1996년 삼성을 다시 성균관대학교로 들어오게 하였다.[* 출처: 장을병 총장의 자서전 '옹이많은나무'] *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의 말에 따르면 60년대 당시 삼성은 전통을 가진 성균관대를 탐냈다고 한다. 하루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갑 사장이 김창숙을 찾아와서는 봉투를 하나 건넸다. 김창숙은 비서 윤종[* 윤봉길 의사의 아들]에게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보라"고 하더니 "5억원 수표가 들어 있다"고 하자 침을 뱉어 던지며, "이러면 내가 성균관대를 어서 가져가라고 내놓을 줄 알았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341450|기사]] 이 내용이 기사화 되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만났는데,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느냐"며 "제가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못한 일(성균관대 인수)을 해냈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http://www.hani.co.kr/arti/PRINT/693080.html|기사]] * 성균관대는 성균관을 이어받아 유림 세력의 주도로 설립한게 전부여서 재정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줄곧 재정적 압박에 시달렸다. 이는 90년대 들어 무재단 상태가 되면서 극심해졌는데, 1997년 삼성재단의 재영입으로 재정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15년 기사를 보면 그때까지 1조5천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https://www.mk.co.kr/news/special-edition/view/2015/08/834484/|#]]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은 낮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15개대 사립 대학 중 15위이다. [[http://m.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732|#2018년 11월 2일 베리타스 알파 기사]] [[http://infor.sahak.or.kr/portal_main.asp|#대학재정알리미]] [[https://support.kasfo.or.kr/menu/u04/04_01.asp|#2018 사립대학 재정통계 지표 보고서]] 다만 해당 문서에서 보듯이 이 순위가 높다 하더라도 그 재산의 수익율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 일률적으로 평가할 항목은 아니다. *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내각으로 성균관대 출신이 많이 등용되어 성시경 인사[*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 태평성대라고 불렸다. 대표적으로 [[정홍원]] 국무총리, [[이완구]] 국무총리, [[황교안]] 국무총리 및 법무부 장관,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1942)|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이남기(1949)|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및 정책조정수석,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 [[신성호(기자)|신성호]] 청와대 홍보특보,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등이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53&aid=0000012907|기사]]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507100013|기사]] * 금융권에 성균관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성금회가 있다. 4대 금융그룹([[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수장 중 3명이 성균관대 출신으로 [[윤종규(기업인)|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용환(기업인)|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김정태(1952)|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성균관대 동문이다.[* 2018년 1월 기준] [[http://news.newsway.co.kr/news/view?tp=1&ud=2018012415451301738|기사]] * 성균관대는 과거 웹표준성 준수 면에서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웹기반 포털 형태로 운영되는 타교의 학사포털과는 다르게, 성균관대의 학사포털 GLS와 인터넷 강의 사이트인 아이캠퍼스는 [[ActiveX]], [[베라인]] 기반으로 되어 있어 학생들에게 무한한 빡침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2017년부터 아이캠퍼스는 HTML5 기반으로 바뀌어 크롬 등 타 브라우저와 매킨토시 등 타 운영체제와 호환이 된다.] 또한 학교의 정보보안 의식도 허접해서 2012년까지 학교 도서관, 컴퓨터실 컴퓨터 OS가 [[윈도우 XP]]였고, 경영관 지하 3층의 프레시맨 라운지가 전부 [[QQ]] 떡칠이 되어 있던 [[충공깽]]한 상황을 연출하였다.[* 다행히 2013년부터 [[윈도우 7]]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Apple|애플]] 제품 사용자들에게는 최악의 편의성을 자랑하는 학교다.[* 2016년 9월 20일부터 Apple On Campus(AOC) 대상 대학교에 추가되었다. http://student.skku.edu/wordpress/ 에 로그인하면 첫 페이지에서 바로 "Apple On Campus 프로그램 제휴안내" 라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 [[iOS]] 공식 앱은 뻑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파리로 보는 것이 편할 수준이다. 특히 학술정보관 앱이 개판이다. 컴퓨터공학과 09학번 학우가 만든 별도의 프로그램을 깔아야만 Mac OS에서 아이캠퍼스가 접속된다. 요즘은 macOS에서 그냥 접속은 된다. 그런데 강의를 못 듣는다. macOS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수강신청이다. 웃기게도 올해부터 수강신청만은 모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다 돌아간다. 그런데 2017년부터 사파리와 크롬에서도 아이캠퍼스가 돌아간다! 2018년 2월에 IE외 타 브라우저에서 킹고ID 로그인을 시도하면 멀티브라우징은 2018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8년 상반기가 지나고 이제는 2019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9년 3월 20부터 크롬으로 킹고ID 로그인이 가능해졌다. * [[성균관대역]]은 자연과학캠퍼스와 꽤 가까운 편이나, 2009년에 있었던 일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한테 상당히 많이 까인다. 율전동 주민들이 성균관대역을 다시 지명인 율전역으로 바꾸려 하자[* 참고로 성대역은 초기에 개통할 때는 율전역이었다. 하지만 당시가 80년대인지라 대학역명을 해달라고 하면 거의 해줬기 때문에 역명이 바뀐 것이다.] 학교 쪽에서 기숙사 학생을 의무적으로 전입신고를 하도록 해 결국 주민투표에서 이겼다. 지금은 기숙사생만으로 부재자투표소가 아닌 일반 투표소를 만들 수 있을 정도.[* 실제로 자과캠의 경우, 2014년 당시 기숙사생들은 신관 B동 대강당에 설치된 일반 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 전직 수학과 교수가 판결에 앙심을 품고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판사 석궁 테러 사건]] 때문에 석궁관대학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학 재단의 비리, 사법부의 비리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고 밝혔다. 다만 사실관계 측면에서 편향된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내막을 보면 일방적으로 매도할 문제는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참고로 성대 수학과 학생들에게는 웬만하면 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지금 학부생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건이고, 그 일을 기억하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은 그 교수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1990년경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 있던 오래된 장승이 누군가에 의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테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후 학생회에서 예전보다 더 큰 나무로 더 두껍고 큰 장승을 만들어 같은 자리에 세웠다. * 그 이후로도 자과캠내 성불회(성균관 불교 동호회)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기물을 때려부수고 불상을 파괴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자과캠뿐 아니라 인문캠에서도 불교 동호회에 침입해서 불상을 참수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 2014년 4월 14일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자가 중앙학술도서관(인문캠)에 [[수은]]을 테러하고 달아나서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열람실은 폐쇄되고 경찰이 수은을 채취해 갔다. * 이처럼 의외로 죽은 학생 이야기가 여럿 있는데, 평면도를 보면 'ㅁ'자 형태(건물의 가운데가 비어 있음)인 600주년 기념관의 옥상에서 성균관대 남학생과의 이별에 비관한 타 학교 여학생이 건물 안쪽의 빈 곳으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은 사건도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건물의 빈 공간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바닥의 석판 중 하나가 유달리 새 것처럼 다른 부분들과 대조되게 깨끗한데, 피가 닦이지 않아 그 부분을 새로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북악산 때문인지 간혹 특이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법학관 근처에는 [[사슴벌레]]가 자주 출몰하며 아침에는 오색[[딱따구리]]도 보인다. 밤에 후문 쪽에서는 아주 가끔 [[너구리]]도 나온다. * 수능 후 논술, 수시면접 등의 기간에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재학생들이 전통 복장을 갖춘 채, 응시자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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