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교육 (문단 편집) === 한반도 === 인터넷 상에는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논어]]를 공부한 다음 단계로 '[[보정#s-2]](保精)'이라는 성교육이 있었으며, [[춘화]]로 성교육했다' 와 같은 글이 인터넷상에 마치 사실처럼 퍼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인터넷 신문이나 커뮤니티, 블로그 글들밖에 없고, 증거하는 논문이나 실제 조선시대 성교육 서적 '보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논어는 수백개 이상이 [[http://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topSearchWord=%E8%AB%96%E8%AA%9E|검색]]되지만, 성교육 도서 '보정'은 찾을수 없다. [[http://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topSearchWord=%E4%BF%9D%E7%B2%BE|링크]]. 춘화로 공공연하게 성교육했다는 이야기도 거짓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윤리적 원리주의를 강조한 [[유교]]국가인 탓으로 춘화의 등장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늦었다. 또한 인조 때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인조에게 '춘의'를 예물로 보내자, 인조는 이를 가루를 내서 부숴버리라는 전교를 내렸고, 조정 대신들 가운데 이것을 손에 잡고 본 사람은 벼슬길이 막힐까봐 조정에서 의론을 했을 정도로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6593|한국민속대백과사전]]. 조선에서 춘화는 강한 유교적인 윤리 의식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크게 성행하지 못하였으며, 성기 부분의 과장과 같은 노골적인 장면도 드문 편이었다고 한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B6%98%ED%99%9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히려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연구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성적 억압|성에 대한 터부·금기시]]하는 억압적 교육만이 존재했고, 앞에서는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뒤로는 성에 탐닉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고착화했다고 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7160300065/amp|링크]][*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1163447|관련된 풍자 만화]]] 실제 [[조선]]에서 교육한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부부유별같은 개념을 '''내외''' 라고 하는데,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및 제도이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B4%EC%99%B8|링크]]. 이런 [[성적 억압]]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대한민국|한국]]이나 [[북한]]이나 둘 다 성교육이 부실할 수밖에 없으며, 그나마 한국이 북한보다 나은 편이긴 하지만 다른 해외 국가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이다. 다만 조선시대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성관계를 하는 방법을 배웠기는 했을 것이다.어쨌든 조선시대 한반도에서도 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이다.성관계를 해야 사람이 태어나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