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감원 (문단 편집) == 조명 == [[박정희 정권]] 당시의 선감원에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티며 기회를 봐 섬을 탈출했던 임용남 목사의 증언을 토대로 실화 소설 '뭉치'[* 개정 이전의 제목은 임삐용('임'용남 + [[빠삐용(영화)|빠삐용]]의 합성어)의 천국. 소설에도 나오지만 임용남 목사는 일곱 번이나 선감도 탈출을 시도한 후에야 자유를 얻었다.]가 만들어졌다. 더 우스운 것은 당시 정부에서는 [[5.16 군사정변]] 이후, 정확히는 [[1961년]] 6월에 '혁명정부'의 이미지 홍보를 위해 이 시설이 모범적 복지 시설이라며 국정홍보 기록영화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61893_30181.html|#]] 제대로 된 자료 없이 잊힐 뻔한 소외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인 선감원 사건은 당시 선감원 부원장의 아들인 이하라 히로미츠가[* 8~11살까지 선감도에서 살았다고 한다.] 쓴 〈아!선감도〉라는 소설을 [[1989년]]에 발표하고 선감원 위령비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극우]] 단체 회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아가면서도 일본 전국에서 연설했다. 이하라는 1998년에 3천만 원을 모금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안산시]]를 방문하여 모금약정서를 작성했으나 갑자기 백지화되었다. 2000년 8월 15일 [[MBC]]에서 광복절 특집극으로 선감원을 다룬 '선감도'를 방영했는데 극본은 이경식, 연출은 오경훈 PD였으며 양동근, 김인권, 김경호, 송금식, 박종설 등 아역 및 중견배우들이 출연했다. 그럼에도 위령비는 감감무소식이었다가 2014년에야 세워지게 되었다. 이때 79세였던 이하라 히로미츠도 참석했다. [[2022년]] [[9월 26일]]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 150여명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 선감동 산 37-1에서 [[유해]] 시굴을 시작했다. 유해 시굴은 [[9월 30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20926_0002026820|#]] 발굴 하루만에 유해가 발견되었는데 10대 추정 치아 10여개·단추 4개도 발견되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6796|#1]],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928500243|#2]] 다만 땅의 산성도가 높아 유골은 삭아 버리고 치아만 남는 형태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묻힌 유해의 수와 신원을 정확하게 특정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915436|#]] 2022년 10월 20일 진실화해위는 선감원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https://www.yna.co.kr/view/AKR202210200552510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