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학부/사범대학 (문단 편집) === 연혁 === || 1895 ||한성사범학교 || || 1911 ||[[서울고등학교|조선총독부중학교]] 임시소학교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임시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원속성과 || || 1913 ||[[서울고등학교|경성중학교]] 임시소학교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임시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 1919 ||[[서울고등학교|경성중학교]] 임시소학교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임시교원양성소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임시여자교원양성소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 1921 ||조선총독부사범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임시여자교원양성소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 1922 ||경성사범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 || 1925 ||경성사범학교 || || 1926 ||경성사범학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교육학전공 || || 1935 ||경성사범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교육학전공 || || 1945 ||경성사범대학 경성여자사범대학 [[경성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교육학전공 || || 1946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 1895년 설립된 [[대한제국]] 한성사범학교를 연원으로 삼고 있으나, 한성사범학교는 [[경술국치]] 이후 폐교되었고, 직접적인 전신은 1922년 설립된 경성사범학교이다. [[사범학교]] 항목 참조. 경성사범학교는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일본에서 [[구제중학교]] 졸업자를 입학시켜 중등교사로 양성하는 곳은 [[고등교육기관]]인 [[고등사범학교]]였는데 남학교의 경우 [[도쿄고등사범학교]]와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가나자와고등사범학교(1944년 설립), 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1945년 설립) 정도로 매우 적었고, 당시엔 교직 같은 개념도 따로 없어서 4년제 대학 출신들도 중등교원으로 많이들 일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제국]]은 1943년 제2차 사범교육령을 공포하여 예과-본과 체제를 갖춘 [[구제전문학교]]급의 [[고등교육기관]]으로 규정하는데, 이 때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는 [[구제전문학교|전문학교]]급 학교로 승격되었다.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는 해방 후 경성사범대학이 되었다가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었는데, 그 위치는 [[선농단]] 공원과 그 주변 주택들의 자리이다. 현재 사범대학은 9동~12동, 10-1동(교육정보관), 13동(과학교육관), 71동(체육관) 총 7개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처음 이전했을 당시에는 11동~12동 2개 건물만을 사용하였다. 9동은 [[서울대학교/학부#s-2.5|경영대학]], 10동은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13동은 가정대학[* 현 [[서울대학교/학부/생활과학대학|생활과학대학]]]이 각각 사용했고, 10-1동이나 체육관은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필연적으로 공간이 부족했기에 교수들의 연구실이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인문대학]]이나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사회과학대학]][* 지금은 인문대학이 1동~8동과 14동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인문대학이 1동~4동, 사회과학대학이 5동~8동을 사용했고 14동은 없었다.]에 위치한 경우도 잦았으며, 수학교육과나 과학교육계열에 속한 학과들은 [[서울대학교/학부/자연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의 건물을 빌려 썼다.[* 그시절(90년대 및 그 이전) 과학교육계열은 학과사무실은 물론 교수연구실까지, 과에 따라서는 시설물의 100%가 자연과학대학(22~27동)에 위치한 경우도 있었다. 교직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이 22~27동 및 인근에서 이루어지고 일부 전공은 자연대 유사학과의 강의(강의코드가 700번대가 아닌 300번대)가 전공필수이기도 했다. 사범대 건물과 사회대 건물은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자연대 건물과는 거리도 좀 있다보니 당연 자연대 건물에서 거의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과학교육계열은 교수나 학생이나 사범대(교사양성기관)으로의 정체성 또한 희박했다. 그시절에는 당장 교수들조차 과반수가 자연과학대학 출신이였고 학생들의 과반수도 자연대 입학을 원했으나 차선으로 사범대를 택했고 졸업 후 진로도 자연대의 그것과 거의 비슷했던 때라서 더더욱 그랬다. (서울대 과학계열 사범대가 자연대와 거리를 두고 사범대로의 정체성이 강화되기 시작한 때는 대략 2000년대 들어서다. 시간이 흘러 자연대출신 노교수들이 퇴임하고 사범대(즉 자기 과) 출신 젊은 교수들이 부임하고, 외환위기 이후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사범대 입결이 상승, 다시말해 자연대를 목표로 했으나 점수가 안되어 사범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사라지는데 본 문서에서 나오는 사범대 별도 건물로의 신축이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져 확실하게 물리적으로도 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관악캠퍼스 이전 당시 사회교육과의 지리전공으로 존재했던 지리교육과마저 자연대 건물에 입주한 형편이었다.[* 단, 사회대 소속인 지리학과 역시 자연대 건물에 들어서 있던 상황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사범대 입장에서 남의 건물 쓰는 셈인 건 변함이 없다.] 이후 법과대학과 경영대학이 각자 건물을 짓고 독립하면서 10동 역시 사범대학 소속의 건물이 되었고, 수학교육과는 비교적 일찍 사범대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9동 강의실 또한 주간에는 사범대학이 주로 사용했으나 행정대학원 학과사무실과 교수연구실이 있는 관계로 소속은 행정대학원이며 건물 명패도 그렇게 붙었었다. 당연 야간수업시에는 행정대학원이 9동 강의실을 쓴다.] 생물교육과 역시 비교적 일찍부터 생활과학대학(13동) 1층 일부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2000년대 이후 생활과학대학이 경영대와 음미대 사이 새 건물을 지으면서 나머지 과학교육계열 학과들도 13동에 들어왔으며, 건물 이름도 과학교육관으로 바뀌었다.[* 이전 버전에 화학교육과가 수의대 근처에 있었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수의대는 2003년에야 관악으로 이전했다.][* 화학교육과는 화학과와 동일한 학생회관 뒤 22,23동을 사용했다. 당시는 56동이 지어지기 전이라서 22,23동이 화학과였다. 90년대 중반 56동 준공 후 화학과 일부가 이전했고 화학교육과는 계속 22,23동을 사용했다. 여담으로 물리교육과는 물리학과와 같은 27동, 지구과학교육과는 지질학과와 같은 24동을 사용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19동 준공으로 19동으로 이전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과학교육계열 학과 교원들은 사범대 출신보다 자연과학대학 출신이 더 많았고 연관된 자연대 건물을 같이 쓰면서 자연대 교수들과 교류하던 분위기였다. 학생들도 강의를 같이 듣는등 자연대같은 분위기도 강했으며 이로인해 통합 '과학교육과'라는 정체성이 희박하고 물화생지 4개과의 파편화가 심했었다.] 이외에도 80년대에 체육관이 건설되어 1989년에 체육교육과가 체육관으로 이전하고 2003년에는 교육정보관을 신축하는 등 오랜 기간에 걸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