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패천 (문단 편집) === 구무림 시절 ~ [[대마교전]][* 고수 2부 52화에서 해당 전쟁을 '대마교전'이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 구무림때부터 정파인으로 분류되었고 실제로 당대 최고수인 열두존자 중에서도 정파 쪽인 삼존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잔악한 행위와 강함만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대마교전 때 본성이 폭발했다고 알려진 점이나 그 때까지는 정파에서 축출되지는 않은 점을 볼 때 정파인으로서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를 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패천이 언제부터 삼존으로 불린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대마교전에서의 실루엣이 기껏해야 중장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것을 보면 삼존 중에서 가장 어린 것은 확실해보인다. || [[파일:사패천 폭주.jpg|width=100%]] || [[파일:사패천 vs 열두존자.jpg|width=100%]] || 그의 전쟁에서의 행적은 죽기 직전 회상을 통해 밝혀진 게 전부인데,[* 독자중 일부는 사패천의 회상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 반영되었을 것이라며 회상 부분의 객관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일단 우대장의 언급과 일치하는 부분은 무극신마를 죽인뒤 이어서 아군이었던 열두존자 두 명을 죽인 것이고 다른 점이라면 우대장은 사패천이 광기가 폭발해 존자들을 공격해 죽인 것처럼 묘사했으나, 그의 회상에서는 존자들이 먼저 그를 도발한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대마교전 자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현재로는 전쟁의 당사자인 사패천의 회상이 후세에 알려진 것(=우대장의 언급)보단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듯. 사패천의 행적은 이후에 다시 다뤄질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사패천 자체가 사천왕에 대한 복수라는 강룡의 목표와는 별 관련이 없기도 하고 이미 죽었다는 점에서 용비불패와 고수 사이의 대마교전을 다루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그의 시점에서 본 회상에 의하면 대마교전에선 마교 측 선봉장인 무극신마를 상대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투에 나선다. 전투의 자세한 과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폭렬대천을 펼친 끝에 승리했으나 위력이 조금만 미진했더라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 독백하는 등 무극신마를 대단한 강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볼 때 엄청난 접전을 펼친 듯 하다. 이렇게 첫 전투에서 적 선봉장을 죽이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열두존자중 두명이 혼란을 틈타 사적인 원한으로 도발해왔고 이 둘도 결국 죽여버렸다. 역시 제대로 된 과정은 커녕 이 둘이 누군지도, 무슨 원한으로 도발했는지도 역시 나오지 않았다. 내막이 어떻든 2명씩이나 팀킬을 해버린 사패천을 다른 무인들이 당연히 가만 놔둘리 없었고, 이후에는 홍예몽, 용비, 구휘에게 연달아 공격당한 끝에 겨우 도망은 쳤지만 혈맥 파열이란 부상을 얻었고, 이후 전성기 때만큼의 실력은 되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무림엔 마교 선봉장을 죽인 공로에도 불구하고 광기가 폭발하여 아군을 죽인 미치광이 정도로 알려지게 된듯. 물론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전쟁 중에 사적인 원한으로 도발을 한 열두존자중 2인에게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전쟁 중에도 아군을 죽이고 싶을만큼 사적인 원한이 있었다는 점이나 용비나 구휘, 홍예몽 등이 전후 사정도 알아보지 않은 채 사패천을 공격했음을 생각하면[* 사패천 회상에 따른 내용.] 전쟁 이전의 행적이나 평판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하여튼 혈맥 파열 부상을 입은 후엔 한동안 잠적했다가 대마교전이 끝난 후에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