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비회의 (문단 편집) === 안라의 신라 접근 시도 === 541년 7월, [[가야]] 연맹과 지도국 [[안라국|안라]]는 [[백제]]와 회의를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하자 다시 [[신라]]와 접촉했다. 백제와의 회의가 끝난 지 3개월 만에 바로 신라를 찾아갈 정도였으니 가야 연맹이 미래를 매우 불안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신라에 접촉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은 [[성왕(백제)|성왕]]은 매우 분노했다. 1차 사비회의에서 백제가 내놓은 말을 싹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곧바로 전부 나솔 비리막고(鼻利莫古)와 나솔 선문(宣文), 중부 나솔 목리미순(木刕眯淳) 및 기신 나솔 미마사(彌麻沙)를 [[안라국]]으로 보내 [[신라]]로 간 가야 연맹의 집사를 소환하려고 했다. 또한 안라왜신관의 관료 카와치노 아타히[* [[기생반숙녜|가렵직기 갑배]](加臘直岐甲背)의 후손으로, 《[[백제본기]]》에서 언급된 카후치노 아타히(加不至費直)와 동일 인물이다.]와 아현 이나사, 좌로 마도를 심하게 꾸짖었다. >가을 7월에 백제는 안라일본부(安羅日本府)와 [[신라]]가 통모한다는 말을 듣고, 전부(前部) 나솔(奈率) 비리막고(鼻利莫古), 나솔 선문(宣文), 중부(中部) 나솔 목리미순(木刕眯淳), 기신(紀臣) 나솔 미마사(彌麻沙)【기신 나솔은 아마 기신(紀臣)이 한(韓)의 부인을 얻어 낳았을 것이다. 백제에 머물러 나솔이 된 사람이며, 그 아버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른 경우도 모두 이에 준한다.】 등을 [[안라국]]에 보내 신라에 간 임나 집사(執事)를 소환하여 임나를 세우는 것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따로 안라일본부의 카와치노 아타히(河內直)가 신라와 통모하고 있는 것을 심하게 꾸짖었다. 【《[[백제본기]]》에서는 "카후치노 아타히(加不至費直), 아현(阿賢) 이나사(移那斯), 좌로(佐魯) 마도(麻都) 등이다."라고 말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 >《일본서기》 〈흠명기〉 2년([[541년]]) 7월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ns.k_0032_0030_0030_0010|#]] 이러한 [[안라국]]의 행동으로 결국 1차 사비회의는 실패였음이 증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