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화경 (문단 편집) === 오직 일불승으로만 성불하여 [[부처(불교)|부처]]가 될 수 있다. === 석가여래는 35살 성도하여 40여년 동안 아함부, 방등부, 반야부의 가르침을 설하였다. 그런데 이 영산 회상에서 처음으로, 그 예전 40여년에 걸친 가르침이 임시 방편이었다고 선언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후에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을 계속 가르쳐 왔는데, '''성문승과 연각승의 가르침으로는 사실 [[성불]]할 수 없다고''' 갑자기 충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선언에 반발하는 제자들 5천여명이 자리를 떠나가는데 그 이후 석가여래는 '''본격적으로 일불승, 대승의 설법을 시작한다.''' 일불승을 말하면서 이 일대사 인연을 밝혔다. 모든 부처는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그 지견을 깨달아 들어오도록 하게 만들기 위하여 이 세간에 출현한다고 선언했다. 곧 중생들을 가르쳐 깨닫게 하기 위하여 그 중생들이 있는 사바세계에 특별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석가모니 부처의 대자비심을 말해주며, 그 대자비심의 보살승만이 사실 또 성불할 수 있는 길이 됨을 알려준다. 여래는 끝없는 보살행으로 불과를 이뤘고, '''그 보살승이 진정한 일불승임을 알린다.''' 성문승, 연각승의 소승법으로는 사실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혀주기에 소승과 대승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는 중요한 경전이 이 법화경이 된다. 혹자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명제가 법화경의 주제라고 하는데, 이는 소승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법화경의 사상과는 조금 다른 주제다. 또 [방편품]에서 석존이 여래의 방편을 은근찬탄할 때, 사부대중이 의심을 품으면서 다음처럼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爾時大衆中有諸聲聞漏盡阿羅漢阿若?陳如等千二百人及發聲聞?支佛心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各作是念 >今者世尊何故慇懃稱歎方便而作是言佛所得法甚深難解有所言說意趣難知一切聲聞?支佛所不能及佛說一解脫義我等亦得此法到於涅槃而今不知是義所趣 >그때 대중 가운데 여러 성문들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인 아야교진여 등 1천 2백 인과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제각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왜 은근하게 방편을 찬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얻은 법은 매우 깊어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는 뜻도 또한 알기 어려워서 성문이나 > 벽지불로는 미칠 수가 없다"고 하시는가?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해탈[一解脫]이란 뜻은, 우리들도 그 법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 전연 알 수가 없구나.’ >---- >[[묘법연화경]] 방편품 29절 (wordofbuddha.co.kr 기준) >(https://www.wordofbuddha.co.kr/sutras/3/sutrachapters/2?page=3#0_29) 이는 곧 사성제와 12연기의 수행으로 열반에 이르렀다고 도달한 제자들의 착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남방원시불교의 가르침으로는 사실 성불할 수 없다는 대승의 명제이다. 성불이 사실상 인간의 자력 수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법화경이기에 모든 중생의 성불이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법화경의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의 가피와 부처에 대한 신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소승불교에 없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따라서 일체 중생의 성불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 법화경의 독특한 사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소승불교에서는 재가신자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재가신자이든 여성이든 다 대승의 일불승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 (여래의 무량수에 대한 절대적 신심이 있다면)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는 명제까지 도달하지만 이는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대한 믿음을 필수로 한다. 일불승으로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은 곧 소승이란 마술성에서 멈추지 말고 대승이란 진짜 불도로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이 대승은 곧 석존이 손수 보인 [[일대사인연]]의 보살행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금강경의 [아응멸도 일체중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보살승이 구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난 곳이 [[화엄경]]의 [보현행원]의 [[보현십대원]]이다. 대승불교에서 사실상 부처로 인정하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또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이나 동방의 약사여래불 모두 보살일 때에 중생 구제를 위해서 굳건히 맹세하고 서원을 세운 이들로, 이 법화경의 보살승을 순수 실천함으로써 부처가 되었다. 이는 곧 법화경의 [[일대사인연]], 보살승 사상이 우주적으로 구현된 예시라 할 수 있다. 모든 부처들이 이렇게 대승법을 실천했듯 불자들에게도 대승의 문을 권고하는 경전이 바로 법화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