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사 (문단 편집) == 역할 == >지방 학교(studium paticulare)와는 달리, 대학들은 학생과 교수를 도처에서 받아들이고 또 대학들이 주는 학위가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 어디에서나 유효하였다(studium universale)는 것이 특히 두드러진 점이었다. 대학들에서 통일된 서구 정신의 보편성 같은 것이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권(sacerdotium) 및 왕권(Imperium)과 나란히 학문을 독립된 제3의 "세계적 직권"으로 평가하였다.''' 쾰른의 참사회원인 로에스의 알렉산데르는 1284년에 재치가 많은 은유시 「파보」(pavo)에서, 이탈리아인에게는 성권을, 독일인에게는 왕권을, 프랑스인에게는 학문을 서구 민족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각기의 특별한 사명으로 돌렸다. '''이러한 대학 중 하나에서 박사 학위의 수여는 귀족과 동등의 지위를 의미하였다. 학문이 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 >-August Franzen · Remigius Bämer·Roland Fröhlich. 《세계 교회사》. 최석우 옮김 >박사 말년차이던 어느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논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누구도’ 라는 말은 우리 연구실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누구도…라는 말이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은 교과서에도, 논문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현재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제 적어도 지엽적인 나의 연구 주제에 관해서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전방에 도달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정답’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가설과 실험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것이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 논문이 되고, 또한 '''인류의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경계를 넓혀간다는 것은 내게 아주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 지식의 경계를 미증유의 세계로 넓혀가는 탐험가'''였다. 아마 평생을 다 바쳐도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내가 넓혀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정말 미미한 것일 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인생을 바칠 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졌거나,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박사 학위의 의미는 바로 '''내가 그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를 앞으로도 평생 스스로 넓혀갈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중략) >'''"저는 이제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연구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거기에 맞는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사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 >최윤섭. [[https://gradschoolstory.net/yoonsup/what-phd-means/|박사 학위라는 것의 의미]]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는 박사 학위를 '''"한 명의 학자로서 홀로설 수 있는 독립적 연구자"'''에게만 수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석사]] 과정 학생들과는 달리, 박사 과정의 경우 [[교수]]가 그렇게 세세하게 관리해주려 하지 않으며, 보통은 키워드 몇개 던져주고는 알아서 성과물을 만들어 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실험이 필수적인 이공계 박사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석사 시절의 실험실에서 다른 실험실로 옮겼다면 연구 주제를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시약, 키트, 기기 등이 다르고 같은 결과를 보기 위한 실험을 하더라도 이전에 있던 실험실과 다른 순서로 실험을 진행하는 등 기술적인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과정생이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할 기간 동안 대놓고 방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실험실에 대한 적응이 완료된 이후로는 얄짤없이 본인 스스로다.] 일명 "방목형 교육".[* 박사 과정쯤 되면 공부하지 말라고 거꾸로 매달아 놔도 공부하는 독종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방식이 효과가 있다.] 심지어는 [[청출어람|지도교수조차 잘 모르는 분야를 오히려 박사 과정 학생이 주도적으로 파고들면서 교수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경우도 있다!]]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계일수록 이런 관계가 당연시되고 또 반가운 상황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교수가 최소한의 학생지도에 관심을 보인다는 전제하에서이다. 아예 제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자기 학생들을 어떻게든 피해다니려 하는 막장스런 케이스도 가끔 있는데 이게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교수]]가 "사회 지도층이자 어른으로서 학문함의 심오한 참뜻을 알려주고 제자가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지대한 관심을 쏟아주는 인생의 스승" 정도로 여겨지는지라, 교수가 "자네 좋을 대로 알아서 찾아 공부해 보게" 식으로 나오면 당황하는 [[유학생]]들이 왕왕 있다. [[http://thoughts.chkwon.net/phd-students|읽어볼 만한 관련 글]] [[http://ppss.kr/archives/67971|#2]] 물론 세세한 코치를 하는 교수들도 있다. 교수의 지도 스타일은 교수의 개인적인 성향에 많의 의존한다. 결국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이 학위논문에 한정된 주제에 대해서 '납득가능한 연구방법'을 통해 타인에게 설득력이 있는 성과물을 낼 수 있는 [[전문가]]"'''임을 공적으로 인증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수가 가르치면 학생은 배운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인 [[주입식 교육]]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사]]까지 또는 잘해봐야 [[석사]]까지는 우등생 소리 듣던 학생이 막상 박사 과정 [[유학]] 갔다가 몇 년 동안 시간만 버리며 개고생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종종 들리곤 한다. 이걸 적응 못 하니, 아무리 악착같이 배우고 물어보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자네 이대로는 [[졸업]]이 어렵네" 같은 차가운 답변뿐이다.[* 그나마 교수에게서 이런 차갑고 매정한 답변이라도 듣는다면, 그건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니 차라리 다행이다. 외국 기준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인 대학원생은 아예 이 분야에 열의가 없다고 간주하여, 이런 충고를 해줄 정도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박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간혹 장기간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도 학위수여는 요원한 사람들도 있는데, 놀랍게도 이들 중에는 조교수들보다 훨씬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특정 종의 식물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곧바로 그 분류와 학명을 전부 알아맞힌다거나 아니면 온갖 별의별 역사적 사건들의 연대와 연표를 달달 외우고 있다. 그러나 지식의 양으로는 박사 학위가 나오지 않는다. 실제 박사급 인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들로부터 '''[[창의력|기막힌 아이디어와 통찰]]'''을 뽑아낼 수 있기에 박사인 것이다[* 괜히 박사의 영문명이 Doctor of '''Philosophy'''인 게 아니다. 즉 철학적인, 다시 말해 "남들과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박사라고 볼 수 있다.]. 석사생이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면 [[박사후연구원|포닥]]이 그걸 듣고 있다가 "그거 재밌네, 이런 '''[[가설]]'''도 세워볼 수 있지 않을까? 저것도 비벼볼 거리가 있는데?" 하고 몇 개 던져보는데, 이것들이 석사 과정 입장에선 "아니, 어떻게 이런 쌈빡한 생각을 해낼 수가 있지?"[* 실제로 과학자들에 있어 최고의 권위를 지닌 상인 노벨상을 받은 연구나 업적은 그 방법이나 발상이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다. 처음 보고 철학논문인 줄 알았다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 이론,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 파블로프의 개 실험 등이 있으며 아니면 [[X선|우연히 발견했거나.]]] 싶은 것들이 많다. 앞의 예를 다시 들자면, 생물들의 학명과 분류를 잘 알아서 박사가 아니고, 그 종의 생물이 하필 그곳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지역 생물권에 대한 통찰을 끌어내고 흥미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기에 박사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 내지 준프로와 진짜 프로의 클래스의 차이.'''[* 실제 사례로,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물질파]]의 아이디어를 박사 학위 청구 논문으로 내고 그 논문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드 브로이]]가 매우 유명하다.] 박사논문은 이렇게 인류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것이 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성립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통과되므로 취득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대학원]]에서 도는 우스개 중에는 "[[학사|학부 졸업생]]은 [[더닝 크루거 효과|자신이 이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석사]]생은 자신이 이렇게나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박사생은 자신이 모르는 걸 남들도 모른다는 걸 알고 '''좋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뒤에 "교수는 기왕 아무도 모르는 거 자신이 맞는다고 우겨본다" 가 붙기도 하는데, 이건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학계에서 학문이 발전하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면 다른 학자들이 반박을 하거나 보완을 하거나 하는 식인데, 이게 전부 다 그 나름의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를 갖추고 이론을 내는 것이다. 교수들이 평범한 일반인들처럼 타당한 근거 없이 이론을 만드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실제로 저렇게 우기다가 대표적으로 망한 사례가 르네 블롱들로의 '[[N선]]'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같은 과학자인 우드에 의해 처절하게 발렸다.]는 말이 있다. 박사들은 실제로 "[[블루 오션|남들이 모르고, 남들의 관심이 없고, 이상하리만치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연구 수요는 높은 것]]"을 눈이 시뻘개진 채로 찾아다닌다. 각 분야들에는 수많은 세부 분야들이 있고 그 분야들에서 수많은 박사와 학자들이 저마다 땅따먹기를 한 뒤 제각기 자기 영역의 터줏대감이 되는 식인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블루 오션]]을 용케 찾아내 낑겨 들어가서 "이 주제만큼은 내가 [[전문가]]!" 를 선언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남들에게 "이게 왜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를 이해시키는 세일즈의 과정도 여간 고단한 것이 아니다.[* 학위 수여 이후 자신의 일자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는 여기에 달려 있으므로 박사생들로서는 필사의 총력전을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학술적으로도 [[오컴의 면도날|그런 설명이 구태여 필요하냐는]] 학자들의 파상공세로부터 자기 일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녔다는 서구 학생들도 날마다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바로 이 관문인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머리를 고스란히 가지고 박사 과정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논문]] 주제를 정하다가 그 주제에 대한 선행문헌이 이상하리만치 나오지 않으면 '''[[석사]] 과정생들은 정말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혀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반면, 박사 과정생들은 블루 오션을 찾았다는 기쁨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아무도 안 한 주제 대부분은 블루오션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남들도 포기한 분야임을 곧 알게 된다.[* 대개 다음의 둘 중 하나다. 1) 대부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 것 2)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제약(방법론적으로 이론을 수립하고 증명하는 데 어려움이 너무 큼, 주장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가 마땅히 없거나 만드는 데 극히 어려움)이 있어서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속칭 도박을 하지 않는 것.] 그러다 엄청 운좋으면 진짜 블루오션 찾아내는 거다. 석사 과정생들이 실력을 쌓기 위해 자기 분야의 수많은 전공서적과 [[핸드북]], [[리뷰]], [[논문]]을 미친듯이 읽어야 한다면, 박사과정생들은 실력을 쌓기 위해 '''온갖 수많은 인접분야에 기웃거려 보는 게 권장되곤 한다.''' 물론 현대 들어서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자기 학문에서 보지 못하던 것을 남의 학문을 통해 볼 줄 아는 것도 자기만의 고유한 연구의 화두를 찾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분야들에서는 박사 과정생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독서 스터디를 하다가 정말 우연찮게 접한 책 한 권으로부터 기발한 연구 아이디어를 찾아낸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심리학]]의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 있다. [[사회심리학]] 전공의 박사 과정생 세 명이서 우연히 [[인류학]] 책을 읽다가 '''유레카!''' 를 외치고 나서 만들어낸 이론이다. 그 뿌리가 [[인문학]]에 닿아 있기 때문에, 처음 이 이론을 발표할 때 철학자들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자 동료 학자들이 발표 중에 짜증내며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치심리, 종교심리 등의 분야에 폭넓게 확장되어 잘 확립된 이론이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회과학]]에서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연구방법론]]을 제안하거나 설계하는 것 역시 박사 학위에 있어 엄청난 이점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양한 방법론을 경험해 보고 차용해 보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정치학]] 전공자가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들고 덤벼든다거나,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빅데이터]] 분석을 시도한다거나 하면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젊은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저널]]들은 이러한 '''[[융합 과학|방법론적인 파격성]]'''을 적극 환영하는 경향이 크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박사 학위가 어떤 주제인가는 곧 그 학자의 '''학문적 정체성'''이 무엇인가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 명의 학자로서 평생 씨름해야 할 화두'''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박사 논문 주제는 대충 정하면 안 된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박사학위 논문의 분야와 주제는 결정적이다. 예컨대 [[리더십]]에 관련된 박사 논문을 쓴 A씨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A씨는 평생의 커리어에서 리더십을 뺄 수가 없게 된다. 이후로도 각종 연구소와 기업체들에서 리더십 얘기만 나오면 A씨를 불러댈 것이고, A씨는 리더십의 스페셜리스트로 간주될 것이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18/0200000000AKR20161218031800054.HTML|이 사례]]에서 보듯이 [[교수]]를 임용할 때 박사 논문의 분야를 기준으로 심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 논란이 빚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이공계에서는 박사 학위 전공이 나중에 일하는(연구하는) 전공과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생물학의 경우 현대 생물학으로 오면서 더 세분화됨에 따라서 이런 경향은 다른 학문에서보다 더 자주 나타난다.] 더불어 박사 학위를 [[학벌|어느 학교]]의 어느 교수에게 받았는지도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다. [[http://academictree.org|AcademicTree.org]] 같은 '''학술 계보 사이트'''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학교의 학풍을 따라, 어떤 학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학술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 좋게 말하자면 박사 과정생들은 지도교수와 장기간 함께하며 지도교수의 안목과 관점, 통찰로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지도교수의 학술적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거나, 더 발전시켜 나가거나, 혹은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아예 대립하는 관계에서는 학위 자체가 안 나온다.]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파벌싸움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박사 학위 논문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는 의외로 많다. 일부 학문의 경우에는 누구네 일파에 소속되었는가에 따라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거나 못 따내거나, 일자리를 구하거나 못 구하거나 하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별별 걸 다 요구하는 한국에서 자신이 소위 '사회성'이 없는 수준을 떠나 기본적인 배려가 없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의 성격이라는 이유로 '박사해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내자'라는 생각이라면 깔끔하게 박사 진학 포기하는 게 낫다. 박사는 학위 따려고 석사보다 더 오랜 기간(평균 6~7년)을 연구실이라는 [[작은 사회]]에 틀어박혀야 하고, 박사라는 권위 때문에 오히려 취업에 있어서도 전문성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어서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그 시간들은 날리고 자신은 나이만 많은 학사 또는 석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박사 진학은 '''"나는 일생 동안 이 분야를 너무 좋아하고 있고, 이거 아니면 도저히 못 살겠다."'''라는 식으로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이 강하다. 조금이라도 학생들을 배려해주는 교수님이라면 특히 이런 걸 강조하고 이럴 자신 없으면 아예 박사 과정 오지 말라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학석사 마인드로 박사 과정 했다간 한국이건 미국이건 유럽이건 시간만 날리게 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다양한 인간관계를 쌓기 어려우니 이미 있는 인간관계, 즉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더욱 잘 챙기는 재주가 필요하다. 먼저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 박사 학위 소지자나 거의 2년을 하고 나간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 어느 직장이나 위치에 있을지 모르므로 박사 과정 중에 인간관계를 엉망으로 해놓았다간 졸업 후에 자신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 과학계가 왜 거품 물고 단단히 분노했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흔히 대중적으로 도는 소문처럼 [[반지성주의|잘 나가는 어린 천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능한 철밥통 연구자들의 트집잡기]]라고 이해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게다가 박사 학위라는 것이 흔한 [[편견 및 고정관념]]처럼 "[[유치원생]] 시절부터 [[미분]]과 [[적분]]을 배워 이해해서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속칭 천재" 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박사 학위는 남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풀이법과 설명을 얼마나 어린 나이에 얼마나 빨리 소화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이건 학자보단 [[테크니션]]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창의력|지금까지 세상에 아무도 모르던 전혀 새로운 문제 풀이법과 설명]]을 '''자기 스스로 찾아내서 남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송&박 논문에 그런 학문적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 [[명예박사]]는 학위 과정 이수나 논문 작성과는 관계 없이 수여된다. 학술적인 업적의 인정이라기보다는 해당 대학이나 분야에 대한 공헌을 고려하여 수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현행법에 의하면, 박사학위과정이 있는 대학원을 둔 학교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고(고등교육법 제35조 제5항), 학술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의 향상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에 대하여 대학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여할 수 있다(같은 법 시행령 제47조). 4년제든 전문대든 대학 교수로 임용되려면 반드시 따야 하는 학위처럼 여겨지지만 본질은 아니다. 교수 임용은 석사부터 가능하지만, 요즘 상황에서 석사 교수를 임용해줄 리 없는 것뿐. 박사 학위가 워낙 귀했던 70년대(그러니까 50년대 출생자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만 해도 석사 교수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강단에서 볼 일이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정년에 들었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권해서 취득하거나 했기 때문. 고학력자가 부족하던 옛날에는 '구제박사'라 하여 학‧석사 학위만으로 국내 대학에서 임용된 교수들이 나중에 대학원 정규과정을 밟지 않고 논문 제출만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있었고 말이다. 이 제도는 1975년에 종료되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윤기중]]처럼 편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거절하고 석사로 남은 사람도 있었고, 요즘도 [[진중권]]처럼 석사 교수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50년대에는 학사만으로 교수가 되곤 했다. [[경성제국대학#s-8.3|해방 후 경성대학의 교원 명단]] 항목으로.[*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의 일본인 교수들이 다 본국으로 돌아가자 거의 대부분의 교수진이 공석이 되어서 이런 식으로 학사 학위만 있는 조선인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이 당시 박사 학위가 매우 희귀한 명예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인 전공과 달리 실기나 실무 능력이 학문적 능력만큼이나 대접을 받고 중요한 하위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 전공의 경우에는 지금도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도 교수직에 아무런 문제 없이 잘만 임용된다.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중퇴한 [[고졸]]이나 [[학사]] 학위만 가지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정도까지 한 [[법관]]들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된다거나, 뛰어난 실력의 [[음악가]]나 [[미술가]], [[무용가]], [[소설가]]가 [[음악대학|음대]], [[미술대학|미대]], [[무용]]과, [[문창과]] 교수가 된다거나 [[올림픽]] 등 [[세계 선수권 대회|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체육대학|체대]] 교수가 되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며, 학위만 없을 뿐 실무 분야에서는 그들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평가만 제대로 되었다면 그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크게 불만이 없다. 특히 [[전문대]]의 경우 실용적, 실무적인 분야가 4년제보다 더 많은 관계로 비 박사 교수의 비중도 4년제보다 높은 편이다. 관련 분야의 유명 기업에서 충분한 실적과 성과를 쌓으면 된다. [[시간강사]]로는 박사 학위가 아니어도 임용하기도 하는데, 석사 학위를 취득한 상태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인 [[대학원생]]이 시간강사를 맡아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교수요원이 워낙 부족하던 시절의 고육지책이라, 박사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하여간 대학원생 시절부터 출강을 시작한 교수들 중에는 그 덕분에 무려 40년 근속으로 정년퇴직한 예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20대도 교수로 나설 수 있고 과거에는 실제 존재했으나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스개소리로 "박사 학위 딸 시간에 [[운전면허증]]이나 따서 [[버스]]&[[화물차]]&[[지게차]]&[[굴삭기]] 등을 운전할 수 있는 [[운전기사]]나 할걸!"이라며 자조하는 학생도 많다. '''진짜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는, 박사 학위는 '''시작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박사 학위는 지식수준을 묻는 것이 아니다.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나는 나 혼자서 '''정확한 연구방법'''을 통해 '''정확한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이 사람한테는 연구비를 맡겨도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면허증이라는 것이다. 사실 갓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은 이제 막 학계에 들어온 신참이다. 아직도 쌓아야 할 지식의 양, 연구 방법이 무수히 많다. 학계에서 박사 학위 수여자는 그야말로 신입사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자조적으로 운전면허증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