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육군사관학교 (문단 편집) == 동문(졸업년도) == [[미 육군]]의 역사적인 [[명장]]들 대부분이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였다. 또한 [[육군 항공대]]가 [[독립]]한 뒤 생길 예정이었던 [[미국공군사관학교]]가 [[6.25 전쟁]] 휴전 이후에나 생길 정도로 늦게 설립되었기 때문에 군적상 육군을 거치지 않고 [[공군]]으로 임관한 장교들이 [[50년대]] 전후로 꽤 많았다. 생도들 사이에서도 공군이 간지 때문에라도 호응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조종사]] 훈련에서 탈락하면 개쪽이 되기 때문에[* [[마이클 콜린스(우주비행사)|마이클 콜린스]]의 회고에 의하면 처음에 공군을 선택한 뒤 시력검사에서 처음에 [[영 좋지 않은]] 결과를 받고 좌절했으나 안과 [[전문의]]의 조언으로 단기간에 [[시력]] 좋게 하는 [[안구]] 운동을 반복해서 겨우 시력검사를 뚫었다고 한다. 실제로 시력이나 여러 요인으로 非조종 공군 소위가 된 졸업자들은 결국 육군으로 임관한 동기들보다 훨씬 부진한 진급속도와 [[기록]]을 남기는 데 그쳤다. ] 더 많은 [[진급]] 기회가 보장되는 육군에서 역으로 인력난을 겪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에는 [[미국해군사관학교]]에서도 [[제독들의 반란]]으로 꽁기꽁기한 공군에다 일정 수의 생도를 임관시켰을 정도로 공군이 인력난에 시달렸는데, 이 때문에 [[90년대]] 초반까지 육사 출신이 공군의 주요 [[장군]] [[보직]]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사는 그런 육사의 포스에 밀린데다 여러 명문대학 [[학군단]]/[[OCS/OTS|OTS]] 출신의 러시와도 경쟁하느라 상당히 오랫동안 [[공군참모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현직인 [[마크 웰시]] 장군이 겨우 '''4'''번째 공사 출신 [[참모총장]]이며 아직까지 공사 출신 [[합참의장]]이 없어놓으니 말 다했다(...) 또한 이들 중에서 [[엘리트]] [[테스트 파일럿]]이 꽤 배출되었고, 이들은 [[MIT]], [[Caltech]] 등 유수의 명문 [[대학원]]에서 공학 학위를 취득, [[1960년대]] [[스푸트니크 쇼크]]와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으로 전미가 열폭하며 촉발된 사상 초유의 [[문 레이스]]에서 크게 기여했다. [[아폴로 계획]]에서 [[달]]에 착륙한 주요 미션들은 15호를 제외하면 모두 해군 출신자들이 [[사령관]]을 맡았으나, [[제미니 계획]]에서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EVA]]를 수행했으나 아폴로 1호 화재참사로 순직한 에드 화이트,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했던 아폴로 8호의 사령관 [[프랭크 보먼]],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과 [[마이클 콜린스(우주비행사)|마이클 콜린스]], 최초로 [[월면차]]를 운전한 아폴로 15호 사령관 [[데이비드 스콧]] 등의 여러 웨스트포인트 출신자들이 족적을 남겼다. 다만 이들은 육사 졸업했다 뿐이지 모두 공군이어서 육군 입장에서는 못내 떨떠름했지만, 이후에는 육군에서도 여러 우주 비행사들이 배출되었다. 이렇게 [[세계대전]] 시절부터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서라도 [[군종]]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 역사가 있는지라 오늘날에도 사관학교 교류 프로그램에서 삘을 받은 용자들이 타군으로 임관하는[* 다만 [[해경]]은 정말 드물다. 육/해/공 사관학교에서는 가끔씩 보이지만 해경은 [[국방부]]와 아예 다른 소속인지라(국방부에서 키워줬는데 [[국토안보부]]로 가면 곤란하니까) 많이 복잡한 편.] 사례가 가끔씩 나온다. 물론 공군 초창기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쪽수가 적은지라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 이는 드물지만, 가끔씩 이렇게 전군한 인원 중에서 사관학교 [[훈육관]], [[교관]]이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육사 출신 해군 장교가 육사에 파견되는게 아니라 해사에서 훈육관을 하는 식이라, 육해전에서 유독 쓴웃음을 짓는 육사 훈육관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해사 나왔다더라(...) 등의 아스트랄한 일화도 있다. 또한 [[스포츠]]에서도 나름대로 끗발이 있다. 프로에서는 군복무 때문에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NCAA]] 등의 [[대학]] 스포츠로 한정하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들이 매우 많고 전역한 뒤 지도자 생활을 하며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듀크 대학교]]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드림팀]]을 이끈 [[마이크 슈셉스키]]가 대표적. 이따금씩 그런 전설들이 [[장군]]을 달기도 하는데, [[조지 S. 패튼]]은 소싯적에 [[근대 5종]]으로 [[1912년]]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권에 근접한 바 있고, 트리플 에이스 [[로빈 올즈]] 준장은 [[비행기]] 조종 대신 풋볼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며 스카웃 제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미국 여러 대학들이 각자 갖고 있는 고유의 스포츠팀 이름은 '''Army Black Knights'''.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 미국이나 미국 자치령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메달도 따오는 경우가 가끔씩 나온다. ~~[[면제로이드|금메달을 땄는데 군대를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1972년부터는 사령관배 풋볼 시리즈(Commander-in-Chief's Trophy)를 매년 해사, 공사와 개최하고 있는데, 공사 해사가 십수회씩 우승한 것과 달리 육사는 겨우 6회 우승으로 심하게 뒤쳐지는 편이다. * [[로버트 리]]([[1829년]])[* [[율리시스 그랜트]]가 그를 예우한 것은 14년이나 [[선배]]인 점도 한 몫 했다.] * [[에드거 앨런 포]]: [[퇴학]]당했다 * [[율리시스 그랜트]]([[1843년]]) * [[존 조지프 퍼싱]]([[1886년]]) * [[더글러스 맥아더]]([[190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극동군 [[최고사령관]]이자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UN군]] 총사령관.] * [[레슬리 맥네어]]([[190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장]]이였으나 오폭 사건으로 인해 사망해 사후 [[대장(계급)|대장]]으로 [[추서]]되었다.] * [[조지프 스틸웰]]([[190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중 미국 대사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나 스틸웰의 뻘짓으로 [[장제스]]와 사이가 나쁘기도 했다.] * [[조나단 웨인라이트]]([[1906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탄반도와 코레히도르에서 [[일본군]]을 무려 5개월동안 잡아놓았으며 종전 직후엔 바탄 방어전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대장진급과 더불어 [[명예훈장]]을 받은 명장이다.] * [[헨리 아놀드]]([[1907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 항공대 사령관이자 최초로 [[미국 공군]] 원수를 받았고 미국 육군 [[원수]] [[계급장]]도 받았기에 텐스타라 불리기도 하다.] * [[조지 S. 패튼]](1909년)[* 아들도 [[1946년]] 졸업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제3군 사령관이였으며 [[성격]]이 워낙 개떡같아 [[후배]]인 [[아이젠하워]], [[브래들리]]보다도 진급이 늦었다.] * [[월튼 워커]]([[191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 휘하에 있었던 장군으로 한국전쟁때 [[유엔군사령부|UN군]]의 핵심 전력인 [[제8군|미8군]] 사령관이였으나 자신의 [[직속상관]]이였던 패튼과 똑같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사후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1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이자 미국 제34대 대통령이다.] * [[오마 브래들리]]([[191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실상 유럽 주둔 미육군 총사령관이였으며 미군 베테랑중 최후의 5성 장군이다.] * [[제임스 밴 플리트]]([[1915년]]) * [[맥스웰 테일러]]([[1922년]]) * [[크레이튼 에이브럼스]]([[1936년]]) * 에드워드 머피([[1940년]]): [[머피의 법칙]]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 * [[로빈 올즈]]([[1943년]]) * [[샘 워커]]([[1946년]])[* 월튼 워커의 아들이다. 미 육군 역대 최초의 부자 4성 장군.] * [[존 위컴]]([[1950년]]) * [[프랭크 보먼]]([[1950년]]) * [[버즈 올드린]]([[1951년]]) * [[마이클 콜린스(우주비행사)|마이클 콜린스]]([[1952년]]) * [[데이비드 스콧]]([[1954년]]) * [[노먼 슈워츠코프|노먼 슈워츠코프 주니어]]([[1956년]])[* 아버지 노먼 슈워츠코프 1세도 웨스트포인트 [[1917년]] 졸업생으로서 육군 [[소장(계급)|소장]]까지 지냈다. ] * [[도널드 쿠티나]]([[1957년]]) * [[에릭 신세키]]([[1965년]]) * [[존 미어샤이머]]([[1970년]]).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단, 군복무는 육군이 아닌 공군에서 했다. * [[존 아비자이드]]([[1973년]]) *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1974년]]) * [[마틴 뎀프시]]([[1974년]]) * [[로이드 오스틴]]([[1975년]]) * [[레이먼드 오디어노]]([[1976년]]) * [[스탠리 매크리스털]]([[1976년]]) * [[커티스 스캐퍼로티]]([[1978년]]) * [[빈센트 브룩스]]([[1980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론 최초로 [[연대장생도|여단장생도]]를 지냈다. 前 [[주한미군]]사령관 겸 주한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이다. 형인 리오 브룩스도 [[1979년]] 졸업자로 [[준장]]을 지냈다. * [[로버트 에이브럼스]]([[1982년]]): 前 [[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군사령관]] * [[H.R. 맥마스터]]([[1984년]]) * [[마이크 폼페이오]]([[1986년]]): 전 미국 [[국무장관]], 전 [[미국 중앙 정보국|CIA]] 국장 * [[윌러드 벌러슨]]([[1988년]]): 현 [[제8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부]] 참모장 * 존 오([[1993년]])[* 한국계 출신 미군 군의관. 임관 후 뉴욕 메디컬 스쿨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복무. [[군의관]]항목 참조.] * [[훈 마넷]]([[1999년]]): 캄보디아 [[훈 센]] 수상의 장남 * 대니얼 최([[1999년]]): [[커밍아웃]]한 [[게이]]로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전역 후에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