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지대학교 (문단 편집) == 여담 == * 학교의 공식 약칭은 '[[명대]]'[* 대표적인 사용 예가 교내 언론인 『명대신문』이다. 다만, 발음 등의 이유로 '명지'나 [[야민정음|'띵지']]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인다.]이고, 학교의 공식 영문 약칭은 'MJU'이다. * 특이하게도 명지대는 [[기독교학과]]가 '''[[명지대학교 대학원|통합치료대학원]]'''에 소속되어있다.[* 보통 신학과나 기독교학과는 신학대학원이나 인문대학원에 소속해있다.] 학부에 신학과, 기독교학과가 없어서 의외로 개신교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명지대에는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게 정설로 알려졌을 정도였다. 명지대 기독교학과는 KAICAM과 인준을 맺었기에 M.Div를 졸업하면 KAICAM 목사가 될 수 있다. * 1985년에 명지학원은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인수하여(학교 시설 제외) 명지대학교 서울캠퍼스 구내로 이전시킨 적이 있었다. 그 국제대학을 명지대학교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12300289109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1-23&officeId=00028&pageNo=9&printNo=166&publishType=00010|흡수 합병]] 하려다가 국제대학 학생들의 극심한 반발로 인하여 정상 수업이 불가능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명지대학교와 국제대학의 합병은 무산되었고, 국제대학은 3년만인 1988년에 다른 재단으로 넘어가버렸다. 서울캠 어디에 다른 대학 둘 곳이 있었냐고? 현 학생회관 건물에 바로 그 국제대학이 있었다. * 같은 재단 산하의 [[관동대학교]]와의 통합설이 2010년대 들어서 많이 돌았다. 관동대 산하에는 '''[[의과대학]]과 [[사범대학]]'''이 있었기 때문에 통합시에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고, 중복되던 학과의 통폐합 등의 시나리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mju&no=228868&search_pos=-230011&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A%B4%80%EB%8F%99%EB%8C%80+%ED%86%B5%ED%95%A9&page=1|전설적인 명지대-관동대 통합안]]]도 나왔었다. 한 때 [[관동대학교]]의 [[의대]]를 자연캠이 가져오려고 했으나(같은 재단) 관동대학교에서 "우리 학교에서 의대 빼면 뭐 남냐"라고 엄청나게 반발해서 결국 그냥 놔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이야기다.[* 법률상 학과를 다른 대학으로 양도는 불가능하다. 학과신설, 폐지, 증원, 감축은 같은 대학 내에서만 교육부의 승인 하에서 가능하다. 거기에 [[의대]]는 지역별 TO로 인가가 떨어진 것이기에 타 지역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신 어차피 같은 재단이니 관동대를 통합[*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3611|명지대-관동대, 통합 논의 급물살]]]해서 명지대 강릉, 양양캠을 만들어 가칭, 명지대 의대[* [[https://dailymedi.com/news/news_view.php?wr_id=757721|명지대+관동대 통합 추진…명지의대 탄생하나-컨설팅 완료, 명지학원 주도 논의…이해득실 철저 계산]]]로 가져오려는 안도 있었지만 백지화 된 모양.[* 대학을 통합해서 [[의대]]를 가지는 것은 가능했을 것이지만, 어차피 문제의 핵심은 명지재단 자체가 돈이 없어서 부속병원을 매입할 돈도 없었다는 게 문제. 경매로 나온 프리즘 병원을 교육부 보증을 받아서 매입했지만. 불과 몇 백억이 없어서 결국 다시 원주인한테 돌아간 걸 생각하면 어차피 통합해도 의대문제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만약에 실현되었더라면 캠퍼스를 4개나 돌리는 대학이 될 뻔했으나, 위에 기술한 前 이사장의 비리로 인해서 관동대학교 의대의 교육병원 역할을 하던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이 다른 이에게 넘어갔고, 후에 여러 가지 돈 문제로 엄청난 갈등이 빚어졌다. 의대교육 문제와 더불어서 교육부의 부속병원에 대한 경고로 인해서 학교재단은 사면초가에 빠졌고, 결국은 관동대학교를 의과대학을 원하던 [[천주교 인천교구]]에 넘기게 된다. 2014년 6월 30일 교육부가 인천가톨릭학원의 관동대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통합은커녕 재단 내 학교의 수가 날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고건]] 전 총리가 총장을 역임했었으며, 고 [[조순]] 서울대 교수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해 별세 전까지 명예교수로 남아 있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혹은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조순 교수가 저술한 미시경제학 원론을 봤을 것이다. 2 * 인문캠에서 02년부터 약 06년까지 여름이면 땡볕 아래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워크맨]]('''[[MP3]]가 아니다!''')에 이어폰을 꽂고 춤을 추는 이가 있었는데, [[경제학과]] 학생들은 이 사람을 '에너자이저'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어느 날 축구학회가 더운 날씨에 축구 3게임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경제학과 고학번이 말을 걸고 그 이어폰을 같이 들어봤는데, 그 이어폰에서는 시사 영어사의 영어회화가 재생 중이었다고 한다. * 테니스, 축구부, 골프부, 농구부이 유명하다. 특히 축구부는 70~80년대 대학축구를 평정하는 등 축구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테니스부, 골프부는 반박불가 전국1위 대학이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가 속해있던 대학농구팀으로 나온다. [[강강약약|하지만 이상하게 '대인배'적 속성이 있어서 약한 팀은 약하게 강한 팀은 강하게 나가고 있다.]] 명지대 태권도도 유명하다. * 2005년 입학식 때 [[동방신기]] 멤버 2명([[유노윤호]]와 [[김준수(JYJ)|김준수]])이 입학했는데, 동방신기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동방신기를 보기 위해 찾아왔던 팬들이 우르르 나가 앞의 3줄이 텅텅 비어서 입학생들의 뇌를 벙찌게 만들었다. 특히나 이 때 명지대 [[학생군사교육단|ROTC]]가 경호를 위해 차출되었기 때문에, 2005년 당시 ROTC였던 이들은 동방신기라면 이를 갈았다. * 2018년까지는 학사 졸업 가운이 검은색에 아무 장식도 없는 심심한 모양이었는데, 2019년 상반기 학위 수여식 때부터는 가운이 파란색 계열에 목에 두르는 장식물이 있는 것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의 시발점이 된 [[강경대]]가 재학하던 학교이다. [[http://www.memorial.or.kr/|강경대 열사 추모사업회]][* 경상관 뒤편에 있던 비석이 강경대 열사를 기리는 비석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비석은 사실 '양호거사비'라고 한다. 양호는 명나라 장군으로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왔다고 한다. 양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양호(명나라)|이쪽으로]]] * [[카다피]]가 명예 학위를 받은 학교다. 정치학박사 명예학위를 수여받았는데, 명지대측에서 직접 [[리비아]]로 가서 수여했다. [[아프리카]]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라나 뭐라나. 심지어 당시 [[국정원]]에서 극구 말리는 걸 [[선우중호]] 당시 총장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일이라 더더욱 욕을 먹었다. 하지만 카다피 사후 리비아에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려버렸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의 내전이 종식되지 않고 있어서 현재는 카다피가 [[억제기]]였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재평가되고 있다. * 미술사학과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재직. [[참여정부]] 시절 [[문화재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잠시 학교를 떠났었으나 공직에서 물러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현재는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 기존의 학교 홈페이지가 모바일로는 구현이 안 되는 등 구식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2019년경에 개편 설문을 돌리고 2020년 3월에 전면 리뉴얼했다. 2019년에 공식 마스코트로 꼽힌 '마루'를 전면에 내세우고, 모바일로도 연계가 가능해졌다. [각주] [[분류:명지대학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