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나라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역사상의 [[통일]] [[왕조]]들 가운데 하나로 1368년 [[주원장]]이 [[원나라]]를 북쪽으로 쫓아내고 건국한 마지막 정통 한족 통일왕조다. [[정식]] [[국호]]는 '''대명(大明)'''[* '대명제국'이 아니다. 전근대의 중원에 있는 왕조들은 정식 국호에 '제국'을 넣은 적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제국'이라는 표현이 아닌 '천자국', '상국' 등의 표현을 썼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이라는 표현이 지금과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제국, 중화제국, 대한제국과 같이 근대 이후의 일이다. 1915년 이전 문헌에는 중화제국이란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중화제국이라는 신조어를 말하면 아무도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현재 중화제국은 1915년도 건국한 중화제국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가끔 과도한 찬양 수단으로 과거 국가들을 중화제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이며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도 자신들을 중화제국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명나라를 언급할 때는 '명' 혹은 '대명'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고, '대명국'이라는 표현은 아주 가끔 등장하며 '대명제국'과 같은 정체불명의 조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국체]](國體)를 국명에 표현하는 것은 유럽적인 전통이다. Kingdom of England(잉글랜드 왕국)이라든지 Herzogtum Lëtzebuerg(룩셈부르크 공국)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칭했다. 이런 전통이 19세기 이후 서구 문명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밀려들면서 전파된 것이고 그 결과로 나온 명칭이 앞에 언급된 일본 제국이니 [[대한제국]]이니 하는 명칭이며 현재 한국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 역시 이 점에선 같다.]이며, [[국성]]을 따서 주명(朱明)이라고도 한다. 모두 16명의 황제가 있었고 1368년부터 1644년까지 276년간 존속했다. 국명은 중원의 한족 왕조들 사이에서는 특이하게도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했던 국명이 아닌 새로 '명(明)'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정했다. 이는 태조 주원장이 믿었던 [[백련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국명으로, 백련교에서는 흑암(黑暗)이 물러가고 광명(光明)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흑암인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나라라 하여 명이라는 국호를 쓴 것이다. 사실 중국 역사에서 왕조를 건국하면, [[중국사 역대 국호|건국자가 기존에 하사받거나 불리던 작위가 고스란히 황제로 격상되면서, 그와 동시에, 작위에 설정되어 있는 봉지가 왕조의 국호 그 자체로 격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태조 [[고제(전한)|유방]]은 한왕(漢王)이었고, 위태조 [[조조]]와 진태조 [[사마소]]는 각각 위왕(魏王), 진왕(晉王)이었다.] 주원장은 황제가 되기 전 오왕(吳王)이었음에도 이를 쓰지는 않았다. 오(吳)라는 글자에 [[강남(중국)|강남]]을 가리키는 지역색이 너무 강하게 들어 있어서 중국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홍무제]]는 건국하면서 수도를 [[난징]]으로 정하였으나 이후에 [[영락제]][* 반란을 일으켜 2대 황제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3대 황제로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가 수도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베이징]]으로 옮겼다. 건국 초기에는 [[만리장성]] 이남의 [[중원]]과 [[내몽골]] 남쪽 일부, [[만주]] 일부에 이르는 지역까지 장악하였다.[* 단, 만주의 경우 명이 대부분의 기간 동안 [[랴오둥 반도]] 일대만을 직접 지배하고 나머지 지역에는 이를 중심으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또 15세기 중엽까지 대대적인 원정을 통해 국가의 위세를 떨쳤다. [[조선]], [[류큐 왕국]], [[베트남/역사|대월]] 등이 [[사대]]의 예를 취하였으며,[* 이 경우 중국과의 [[조공]]으로 얻게 되는 정치적, 군사적 안정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현대 들어선 '조공 무역'에 주목한 시각도 부각되고 있다. 단, 사신 접대비나 조선 초([[태종(조선)|태종]]~[[세종]]) [[공녀]] 문제, [[임진왜란]] 이후 [[재조지은]]으로 인한 관계 변질 같은 문제 등은 감안해야 한다.] [[일본]]도 [[무로마치 막부]] 초기부터 명나라에 [[조공]]하기 시작했다. [[중화제국]]이 세계관의 일부였던 원나라, 청나라와 달리 중화제국의 정체성이 강해 앞뒤 왕조에 비해 국토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실제로 [[몽골인]]의 국가인 원나라와 [[만주인]]의 국가인 청나라는 둘다 [[국토]] 면적이 1,300만 km²가 넘어가는 나라다. 반면 명나라는 700만 km²도 안된다. 물론 '''상대적으로''' 작다는거지 명나라는 현대의 [[인도]]보다도 국토면적이 큰 나라다.] 농민에 의해 건국되고 농민에 의해 멸망한 나라이기도 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주원장이 [[몽골 제국]]의 [[원나라]]를 [[북원|북쪽으로 몰아내어]] 건국되었으나, [[만주족]]의 [[청나라]]가 남하 침략하여 나라가 어려워지고 폭정으로 농민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역시 가난한 농부였던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북경이 함락되고 황제인 [[숭정제]]가 자살함으로써 명나라는 멸망하였다. 이후 최후까지 저항하던 [[남명]]과 타이완의 [[동녕 왕국|세력]]마저 청나라에게 항복하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명나라의 존속 기간은 [[한국사]]의 [[고려]] [[공민왕]] ~ [[조선]] [[인조]](남명 포함 시 [[현종(조선)|현종]]까지) 시기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