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똥군기 (문단 편집) === [[유교]] 문화 === 많은 한국인들이 유교 문화를 똥군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유교 그 자체가 험악한 군기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정확히는 점차 숨막히는 규율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흑화된 [[변질된 유교적 전통]]과 그런 변질 속에서 탄생된 [[면신례]] 관련 악습이 똥군기 문화를 증폭시킨 것이다. 상세한 것은 면신례와 변질된 유교적 전통을 참고해보자. 변질된 유교와는 달리, 진짜 유교의 경전들에서는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가르치고 있다. 사서오경 가운데 하나인 예기에서는 다섯살 이내는 허물없는 친구로 지내고 10살이 많으면 형님으로 대접하고 자신의 나이보다 두배가 많은 사람에게는 부모와 같이 대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분명 '''하위자가 상위자에게 해야할 몫 못지 않게 상위자가 베풀어야 할 덕목 역시 강조'''하고 있다. 공자의 '군군신신부부자자' 나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왕같지 않은 왕은 몰아내는 게 맞다]]'가 바로 그 예이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나이 차이가 심해도 노비를 제외하면 성인끼리는 존대했다. 왕도 신하에게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와 같이 하오체를 자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가까운 형제간에도 하오체를 사용했다. 아버지는 장성한 자식에게 공대를 했으며, 스승은 관직에 나간 제자에게 공대를 했다고 한다. '''체면 때문이라도 상호존중의 문화를 지켰던 것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06/story_n_8248972.html|외국인이 지적하는 잘못 알려진 유교 문화]]. 심지어 [[권율]]과 [[이항복]]은 나이상으로 19년 차이, 촌수상으로는 장인어른과 사위(이항복이 권율의 딸과 결혼했다.) 지간인데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놀던 사이였다. 오히려 조선에서 문제가 된 '''[[면신례]]라는 문화는 유교의 적통과는 완전히 딴판인 악습'''인지라 조선 내에서도 이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거웠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여러 번 철폐하려고 시도했고, '''심지어는 왕이 직접 나서서 이를 근절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면신례 악습은 관료들과 군대에 널리 퍼져 신병들과 후배들을 여럿 잡았으며 목숨까지 잃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관료들의 면신례는 새로 부임한 상관도 가혹행위는 없는 대신 한 턱 내야 상관 쳐준다는 괴이한 문화였다. 그외에도 [[신립]], [[이일]] 등의 장군들이 군인들을 잔인하게 대했다는 기록도 있었으며[* 일례로 이일은 1601년 군인을 때려서 죽게 했다는 이유로 함거로 압송되던 도중 함거 안에서 사망했다. 이 혐의가 있든 없든 간에 저런 일로 고발을 당할 정도면 이일이 평소에 부하들을 얼마나 학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장군들이 화병[* 오늘날의 취사병에서 전투근무지원 군 병과에 해당] 등을 부려먹는 건 오늘날의 당번병과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백성들 사이에서도 사적인 복수, 징벌이 만연했기에 군인들 간의 관계가 평화로웠을 가능성은 없다. 이런 문제는 조선 내에서도 골치였지만 옆나라 일본이나 중국에도 존재하였으며 전근대 서양에서도 만연한 악습들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