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군연합/사례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보헤미아 왕국|보헤미아]]-[[헝가리 왕국|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크로아티아]] ==== 1526년 성립된, 역사에서 부르는 [[합스부르크 제국]]은 바로 이 오스트리아 중심의 동군연합이다. 근원은 보헤미아-헝가리 동군연합으로 보헤미아와 헝가리는 14세기 [[룩셈부르크 왕조]]의 [[지기스문트]] 아래 동군연합을 이루지만, 동군연합 1대 만에 룩셈부르크 왕조가 단절된 이후 넘겨받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알브레히트 2세]]의 급사와 어린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의 즉위로 정착하지 못하고 각국의 [[섭정]]들이 득세하면서 동군연합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라디슬라우스마저 어린 나이에 사망하면서 동군연합은 끊겼으나, 귀족들 간의 갈등 끝에 두 나라 모두 합스부르크 [[여인]]이 시집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야기에우워 왕조]]를 왕으로 모시면서 1490년부터 헝가리 왕국이 보헤미아 왕국과의 동군연합이 됐다. 하마터면 폴란드-리투아니아-보헤미아-헝가리 동군연합이 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보헤미아-헝가리 왕이 폴란드-리투아니아까지 이어받지 못해 두 동군연합이 통합되지는 않았다.[*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는 [[카지미에시 4세]]의 장남 [[울라슬로 2세|브와디스와프]]([[헝가리어]]로는 울라슬로, [[체코어]]로는 블라디슬라프)가 물려받았지만 폴란드 귀족들은 카지미에시 4세의 3남 [[얀 1세 올브라흐트]]를, 리투아니아 귀족들은 카지미에시 4세의 4남 [[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를 선택했고 얀 1세가 먼저 죽자 알렉산데르가 폴란드까지 상속받았다가 알렉산데르가 죽자 막내동생인 [[지그문트 1세]]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군주로 즉위했다.] 1526년 야기에우워 왕조의 [[러요시 2세]]가 후사 없이 [[오스만 제국]]과의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자 러요시의 매부인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1세|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를 차지하면서 오스트리아-보헤미아-헝가리 동군연합, 즉 합스부르크 제국(Habsburgermonarchie)이 만들어졌다. 한편 헝가리 왕국은 1102년 [[칼만]] 왕부터 크로아티아 왕위를 겸하고 있었고, 모하치에서 러요시 2세가 전사하자 크로아티아는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페르디난트를 왕으로 옹립해 크로아티아 역시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들은 몇 번의 해체 위기는 있긴 했지만[* 1618년 [[30년 전쟁]] 당시 보헤미아 귀족들의 [[팔츠 선제후국|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국왕 옹립이나 [[제2차 빈 공방전]]을 촉발시킨 퇴쾨이 임레의 [[슬로바키아|상헝가리]] 봉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터진 [[라코치 페렌츠 2세]]의 헝가리 독립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당시 보헤미아 귀족들의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7세|카를 알브레히트]] 옹립, 1848~49년의 헝가리 혁명 등.]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공중분해될 때까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아래에 놓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