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달성 (문단 편집) == [[대구광역시]]의 옛 성터이자 별칭인 달성(達城) == [include(틀:대한민국의 산성)] ---- ||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62호}}}''' || || {{{+1 {{{#fff '''대구 달성'''}}}}}} {{{-1 {{{#fff 大邱 達城}}}}}} {{{-1 {{{#fff Dalseong Fortress}}}}}}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fff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달성공원로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fff 면적}}}''' || 105\,238.5㎡ || || '''{{{#fff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fff 제작시기}}}''' || [[삼국시대]]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달성토성, 너비=4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달성공원 사진.png|width=100%]]}}} || || {{{#fff ''' 하늘에서 본 달성공원의 전경 '''}}} || ---- [clearfix] '''달성'''(達城) 또는 '''대구성'''은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일대에 위치한 옛 [[성(건축)|성]]으로, [[한반도]]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 된 [[토성(건축)|토성]](土城) 가운데 하나이다. 최초 건립 시기는 초기 [[철기 시대]] 토착민 세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삼국시대]]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며 꾸준히 관리・유지되었다. 오늘날에는 '''[[달성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달성공원을 줄여 '달공'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이 달성은 [[대구읍성]]과는 다르다. 대구읍성은 조선시대에 경상감영을 두르고 있던 다른 성을 가리키며, 구한말 철거되었다. 달성은 대구읍성 서쪽 밖에 있다. '달성'의 '달(達)'은 중남부 고대어 지명에서 '산' 또는 '성' 등 높은 곳을 의미하던 말이며,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達句伐・達丘伐), 달구화(達句火・達丘火), 달벌(達伐) 등에 들어가는 '달'과 유래가 같다. 대구의 읍면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인 [[달성군]], 대구 서쪽의 행정구역인 [[달서구]], 대구 서쪽을 흐르는 하천인 달서천 등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밖에 '달성'이 직접적으로 행정구역의 어원이 된 것으로는 '[[성서(지역)|성서]]'가 있다. 이는 달성의 서쪽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본래 삼한시대 지역 유력 부족의 거처 및 요새였다. 평지의 낮은 구릉지를 이용해 다듬은 토성이며, 발굴 결과 토성 윗부분에 돌로 다시 쌓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삼국 시대에 달구화현이라는 이름으로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이 시기에 [[달성 고분군]]도 형성되었다. 능선따라 조금 남쪽 서문시장 서쪽편의 언덕으로서 반고개까지 쭈욱 이어지는 지역인데, 지금은 주택가 뿐인 바로 그 곳에 비산동 고분군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고분군의 사진도 남아있으나 지금은 개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선]]시대에는 달성 서씨의 세거지, 감영, 감옥 등으로 쓰였다. 일제강점기에 와서 공원화되었는데 그 안에 대구신사(大邱神社)도 세워졌으나 해방후 철거했으며 그 후 대구시가 동물원을 설치하였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영남권에서는 드문 동물원으로서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의 명소이자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대구 시민치고 달성공원에 한 번 안 가본 사람은 드물 정도이며, [[인어공주를 위하여]]와 같은 만화에도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달성공원 앞에는 1970년대 초까지 작은 개천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달서천(達西川). [[건들바위]]앞을 지나 [[서문시장(대구)|서문시장]]옆을 돌아 달성공원 앞을 거쳐 북서쪽으로 흘러 [[북부정류장]]남쪽의 염색공단옆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루트. 현재 달서천의 대부분은 복개하고 금호강에 합류하는 끄트머리만 조금 남아있다. 대신 달성공원 정문의 담벼락안쪽 언덕을 보면 어딘가 [[건들바위]]와 비슷한 강변의 절벽같은 부분이 남아있는데 말그대로 앞도로가 개천이었을 때의 흔적이다. 대구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덕 위에 세워진 낡고 허름한 동물원이나 산능선(토성 성벽길) 따라 운동하기 좋은 커다란 동네공원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형편. 정문의 '시민의 문' 이라는 한글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며 키가 225cm로 달성공원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리던 수문장 [[류기성]](1926~1999) 씨도 대구사람들한테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구광역시]], [[대구도시개발공사]]는 2024년까지 [[중구(대구광역시)|중구]] 달성동에 있는 달성공원 동물원을 [[수성구]] [[삼덕동(대구 수성)|삼덕동]] [[대구대공원]]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https://www.duco.or.kr/land/park|#]]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