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논산시 (문단 편집) == 역사 == 지금의 시가지 지역은 [[백제]] 때 가지내현(加知奈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시진현(市津縣)이었고 [[9주 5소경]] 중 [[전주]]에 속했다. 한편 [[황산벌]]로 유명한 연산면 지역은 백제 때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이었다. 그곳은 신라 경덕왕 때 황산군(黃山郡)이었고 9주 중 [[웅주]]에 속했다. 한편 덕은현(德恩縣)은 가야곡면에 중심지가 있었다. 1397년 시진현이 덕은군에 흡수되고 1419년 은진현이라 칭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은진현, 연산현, 노성현, 석성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여러 지역들이 [[1914년]] 4월 1일 [[은진군]]을 중심으로 연산군, [[노성군]] 및 석성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비로소 논산군이 되었다. 순우리말 관습 지명으로 놀뫼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놀 자를 한자 [[論]]자로 음차하여 논산이 되었다. 이후 [[1931년]] 4월 1일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했으며, [[1938년]] 10월 논산면이 논산읍으로 승격되었다. 현 논산 시내인 논산읍보다 강경읍의 읍 승격이 더 빨랐다는 점에서 당시 강경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 영향으로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도 논산 시내가 아닌 강경읍에 있다. [[1963년]]에 구자곡면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을 통합하여 [[연무읍]]으로 승격하였다. [[1996년]] 3월에 논산군 전체가 논산시([[도농복합시]])로 승격되었다.[* 당시 중심지였던 논산읍(현 부창동+취암동)이 5만명을 넘기지 못했지만 연무읍과 논산읍이 모두 2만 명 이상이고 계룡출장소(현 [[계룡시]])를 포함 15만 명이 넘었기 때문에 시로 승격할 수 있었다. 참고로 [[포천시]] 역시 이러한 조건으로 시로 승격할 수 있었다.] [[2003년]] 9월에 [[계룡시]][* 당시 두마면, 하지만 충남직할 계룡출장소였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만, 즉 주소만 논산시이고 행정권은 그전부터 분리되어 있었다.]가 분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