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희진(배구선수)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부산 상리초등학교 4학년 재학 중 살을 뺄까 해서 육상부 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하다 5학년 말 두각을 나타내면서 육상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희진의 부모는 그녀가 운동을 하는 것을 심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몰래 운동을 하다가 부모에게 들킨 후, 6학년 때까지 해보고 성과가 없으면 그만두기로 했고 --그럴 리가-- 보란 듯이 2003년 소년체전 높이뛰기 금메달을 획득했다. 키도 175cm를 넘으면서 농구부, 배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 당시 김희진의 아버지는 몸싸움이 심해 자주 다칠 수 있는 농구보다는 배구를 권유했다.[* 김희진은 농구와 배구를 둘 다 좋아한다. 다만 아버지가 위의 이유 때문에 배구를 시키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농구도 거의 프로 수준으로 잘한다. 여담으로 김희진의 피지컬이면 파워 포워드 내지는 센터를 맡을 수 있다.] 때마침 [[중앙여자고등학교]] 심재호 총감독이 그녀를 적극적으로 스카웃하면서 2003년 6학년 2학기에 고향 부산을 떠나 상경, [[추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김희진은 2004년 [[중앙여자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다. 보통 배구 선수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입문하는 것에 비하면 늦은 출발이었다.[* 상대적으로 입문이 늦었기 때문에 서울중앙여중 시절 1년 유급을 했다. 그래서 1991년생임에도 1992년생들과 동기이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같은해 유스(U18) 대표로 아시아와 세계대회에도 출전했다. 2008년 중앙여고 시절에는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8년 아시아주니어(U19)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했다. 2009년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는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의 남성여고를 3:0으로 꺾고 중앙여고의 대회 2연패를 이끈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김희진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큰 키와 중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파워로 큰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단순히 키만 큰게 아니라 골격도 크고 건장했다. 서울중앙여중·고 시절부터 [[김연경]]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 불리며 김희진이 프로에 올라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팬덤이 형성됐고, 많은 배구 팬들 역시 국가대표 경기에서 김연경-김희진 쌍포를 보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200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인 국가대표로 뽑혀 FIVB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했다.[* 2021년 출연한 [[런닝맨]]에서 밝히기를, 윗선에서는 더 빨리 국가대표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학교 선생님들의 우려로 늦춰진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나이는 19살이었다.] 이후 IBK기업은행이 신생팀 창단을 발표함에 따라 1순위로 IBK기업은행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했다. 프로 입문 이전부터 이미 성인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입증한 김희진은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의 초신성으로 떠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