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충선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평가 == [[1915년]] 일본인 연구자들의 모임인 '조선 연구회'는 사야가 문집인 《모하당문집》을 다시 간행한다. 책머리에 가와미 히로타미는 "적혀 있는 글은 위서이며, 사야가 같은 매국노가 우리 동포라는 것이 유감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전승은 완전 부정하는 것이다.] [[1924년]] 역사학자 세데하라 탄은 "사야가에 관한 확실한 자료는 없다"며 허구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총독부]] 연구원이었던 나카무라 에이코는 '''현지 조사를 실시'''하고 1차 자료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해 [[1933년]] 청구 학총에 논문 <모하당 김충선의 자료에 대해서>를 쓰면서 사야가가 실존했던 인물임을 증명하여 그 학설이 정당성을 얻고 있다. 해방 이후,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후 일본 관광객들이 하나 둘 우록동을 찾으면서 [[1971년]] [[시바 료타로]]가 쓴 《가도를 가다. 한국 기행》에 사야가와 우록리가 소개되면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1999년]]에는 무려 1,500명이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공영 방송인 [[NHK]]에서 <'''출병에 대의 없다, 히데요시를 등진 사나이'''>([[1992년]] 3월 30일 방송.)라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는가 하면, [[아사히 신문]]에서 "양식 있는 무사의 의로운 결단" 등의 제목으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NHK]]는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의 연계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따라서 [[일본의 우경화|우경화 추세]]에도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다. [[아베 신조]] 2기 내각때 NHK를 우경화시키려던 시도가 있었고 [[햐쿠타 나오키]]같은 인사들이 망언을 하는 등 시끌했던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민방에 비하면 중립적인 축에 속한다. NHK 대하드라마 [[야에의 벚꽃]]에서 주인공인 니지마 야에가 우익으로 돌변한 자신의 제자를 디스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 등, 오히려 반우익적 성향이 더 강하다.] [[1988년]] 한국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도 나왔으며, 일본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 등으로 묘사되어 실리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