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병관(언론인) (문단 편집) == 고려대 앞 YS 문전박대 촌극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800191_STD.jpg]] || [youtube(TVUyYqKwYYs)] || || 오마이뉴스에서 촬영한 [[https://youtu.be/TVUyYqKwYYs?t=160|당시 김병관 회장이 횡설수설하는 모습]]. 2분 40초부터. || 2000년 10월 1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려대]]에 강연을 하러 왔다. 그러나 사흘 전인 10월 10일 고려대 총학생회는 김영삼의 고려대 방문 저지를 이미 결의했다. 물론 대학당국은 성만영 학생처장을 통해 강연이 어려울 것 같다며 김영삼의 대변인 노릇을 해온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에게 연기를 요청했으나, 김영삼은 이를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고대 정문까지 왔다. 그날의 강연을 기획한 [[함성득]] 교수[* [[연세대]] 출신으로 고대 교수가 되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국내 최초로 '대통령학'을 연구하여 나름 독보적인 인물로 꼽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2009년 인터넷 검색광고 전문업체 ㅍ사 대표 윤아무개(46)씨한테서 “옥션이 광고대행 수수료를 낮추려고 하니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부탁해 수수료 인하 방지 및 기존 계약 유지를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윤씨한테서 현금과 승용차 리스료를 합쳐 7850만 원을 받았다가,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다. 그 직후 고려대에서 당연퇴직 처리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7030.html#csidx67e76590d7055cd997a741008ae9509|#]]]도 하루 전 총학생회로부터 김영삼 교내진입 저지방침을 통보받았지만 수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강연을 밀어붙였다. 결국 아침부터 정문을 막아선 약 200여명의 고대생들때문에 김영삼은 고대에 진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분유통으로 소변을 해결하면서 그 앞에서 버텼다. 그때 고대 총학생회 쪽에서 “우리는 정문만 막고 있으므로 후문이나 쪽문을 통해 들어가는 길은 터주겠다”는 타협안이 나왔지만, 좌우명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인 김영삼이 “뒷문으로는 절대 안 들어간다. 떳떳하게 정문으로 들어가겠다.”고 버텼다. 이때 김병관 이사장이 갑자기 '''술이 덜 깬 상태'''로 나타나 김영삼의 차 안에 들어가 면담을 하고 나오더니 시위학생들에게 다가가 '''“나 재단이사장이다. 문 열어라.”'''고 호통을 쳤다. 하지만 학생들은 “못 연다. 걸어서 들어가라”며 야유를 보냈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이에 김 이사장도 '''“나는 학교에 걸어서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며 큰소리로 맞받았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김병관은 별 수 없이 --가오 안 살게-- 정문에 딸린, 차가 드나드는 옆문을 통해 학교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그러던 김병관은 오후에 다시 정문에 나타나 학생들 앞에 '''“너희들이 이러면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고려대학은 민족대학, 동아일보는 민족신문, 동아일보로 모신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민족대학' '민족신문'이란 말이 왜 나오는가? 확실히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냥 이말 저말 하는 중이다.] 학생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김병관은 김영삼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뒤 차 밖으로 나온 김병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98년 10월 22일 나에게 ‘하사’한 ‘조선영화음악’이라는 CD 가운데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곡을 김 전 대통령에게 들려줬다”'''고 말했다.[* 이 CD는 당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으로 김병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뜬금없이 시위학생들에게 북한과의 친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로 대학생들이 시위하는 건 [[종북주의]] [[한총련]]이라고 지레짐작해서 도매금으로 엮은 것이었다. 한 마디로 '니들 김정일 수령님 모시는 빨갱이들이지? 내가 다 알아!'식의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린 것.] 김병관은 이어 둘러싸인 기자들에게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은가…”라는 <심장에 남는 사람>의 노래가사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던 김병관은 갑자기 옆의 어느 기자에게 "어느 신문사 기자인가?"라고 물었다. "한겨레 사회부 기자입니다"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어? 한겨레? "라고 반응하더니만,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한겨레신문]] [[정연주(언론인)|정연주]] 논설위원이 쓴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라는 칼럼의 복사본을 꺼낸 후 기자들에게 이를 보여주고 주먹을 번쩍 들면서 '''"일어나라 조폭! 폭파해라 조폭! 젊은이여 일어나라! 사주 타도하라! 그거 아냐?"'''라고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가지 웃긴 사실은 저렇게 만취한 상황에서도 언론사 사주라는 자각은 있는지 실제 타 언론사의 헤드라인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겨레]]가 저런 사설을 썼었고, 취중에서 용케도 한겨레 기자 앞에서 저 이야기는 꺼냈다...] 이어서 '''“YS에게도 보여줬다. 동아일보는 [[김대중|DJ]] 신문이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조폭들 보고 다 일어나라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761.html|#]] 그러다가 김병관은 '''느닷없이 농성학생들 틈에 섞이더니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을 빼앗아 들고 10여분간 학생들과 함께 앉아 시위를 벌였다.''' 이 와중에 시위대 사이에 앉아서 담배도 피웠다(...) “이왕 망신당하는 마당에 내일 <한겨레> 톱으로 나련다. 나도 열두시까지 여기 있겠다.”면서 버티던 김 이사장은 동아일보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되돌아갔다. --완전 코미디야, 코미디-- 사흘 후 [[김영삼]]은 기자간담회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가리키며 “너그 회장한테 술 좀 그만 묵고 다니래라. 대낮에 취해갖고 차 안에서 말도 많이 하고. 그래갖고 회사나 학교 운영 되겠나. 내 차 안에서도 들어와서 노래 듣자고 하던데, 생각해보라. 내가 그때 노래 듣게 생겼나”고 얼굴을 붉혔다. 2000년 10월 25일에는 이 사태를 놓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위원장 [[최문순]], 이하 언론노련)이 성명서를 냈다.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은 지난 13일 [[고려대]] 앞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취중 추태를 보인 이후 지금까지 어떤 사과나 유감을 표하지 않고 있다"며 "김회장의 고대 앞 추태는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회적 사건이 아니며 우리나라 족벌언론의 '황제 경영'에서 비롯된 오만과 독선의 결과물인 만큼 김회장은 전 언론인과 독자들에게 [[석고대죄]]하고 동아일보를 떠나라"고 주장했다. 언론노련은 이어 김회장의 상습적 음주와 그로부터 비롯된 비정상적인 회사 운영, 무능 경영, 상식을 벗어난 편집권 간섭 등으로 인해 동아일보가 조직의 난맥상과 함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병관 회장이 동아일보 지면을 공개 비판한 기자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가한 것을 비롯해 노조를 비롯한 저항세력을 지속적으로 고립, 소외 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내부로부터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노련은 김회장이 2000년 10월 3일 민병욱 논설위원 칼럼[* [[한나라당]]을 강도 높게 비판한 칼럼이었다.]을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무단 삭제한 것과 [[http://news.donga.com/Culture/more7/3/all/20000908/7580528/1|<대구·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강요한 것 등이 심각한 편집권 유린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가 유신 시대의 동아투위를 거쳐 박종철 사건 등 근현대사의 고비 고비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냈던 시대의 양심인 만큼 김병관 회장의 사유물도 아니고 동아일보 구성원들만의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동아일보를 살리기 위해서 김 회장 퇴진 요구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0022038#cb|#]]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